1.
위로는 헐렁한 회색 후드와 보라색 티셔츠, 아래로는 청바지를 입은 30대 초반의 여자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우리를 찾아왔다. 그녀는 식료품 코너를 돌다가 아이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찰이 빚은 비극에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그녀는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매우 초조해했다. 나는 매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아이를 못 찾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녀는 발을 딱딱거리며 바닥을 차고 있었다. 여직원은 그녀가 말해준 인상착의의 아이를 발견할 시 고객센터로 보내주기 바란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이 나간 후 사무실에 그녀를 데려와 커피를 내어주며 안정을 취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아이의 이름을 되뇌며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남편과 통화조차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도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이는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던 가장 단단한 기둥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에게 더 큰 동정심이 일었다.
“방송이 나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시식 코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돌아가 봤는데 없었어요. 2층에 게임기가 있는 곳에 있나 싶어서 올라가 보았는데도 없었어요. 계속 돌아다녔죠. 마트 전 매장을 돌아다녔어요. 가구, 식기, 가전제품, 거기엔 물건밖에 없었어요. 대체 준서가 어디에 간 걸까. 우리 준서 제발 찾아주세요. 준서는”
그녀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나 역시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놈에겐 잠시였을 그 시간이 내게는 영원처럼 길었다. 아내는 울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우리 아들 못 봤냐고 물었고 나는 당장 안내소로 달려가 아이를 찾는 방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태연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고 우리는 울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여직원에게 아직 들어온 신고가 없냐고 물어보았다. 여직원은 아무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자는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고 입안에서 준서야 준서야라며 아이의 이름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덕택에 나마저 얼굴도 보지 못한 준서가 애타게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졌다. 그녀 옆에 남편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가 지어야할 부담감의 일부를 나도 함께 지게된 것이다. 여직원에게 방송을 한 번 더 하라고 지시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불안해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 미안할 정도로 그녀는 자책하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년, 바보, 멍청이, 한심한 년, 제발. 아무렴 욕하고 싶을 것이다. 후회하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잃어버린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진 그녀는 아이의 손을 놓쳐버린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2.
“엄마를 찾는다는 아이가 왔는데요.”
여직원은 사무실 문을 열며 말했다. 여직원의 옆에는 10살 남짓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인상착의는 여자가 말한 그대로였다. 캐릭터가 그려진 붉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 필시 여자의 아이일 것이다. 과연 아이를 보자 여자의 얼굴에서 불안한 기색은 완전히 사라졌고 울면서 달려가 아이를 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웬걸 아이는 제 어미를 피하고선 반대편 모퉁이로 도망쳐 내 뒤로 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았고 아이 역시 제 엄마를 찾았고 이제야 만났다. 그런데 아이가 도망치다니.
“아줌마 누구세요?”
“아줌마라니? 네 엄마잖니. 준서야.”
“전 아줌마 몰라요.”
“이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요. 어머니 확실히 아드님이 맞습니까?”
“내 아들이 분명해요, 준서야 왜 그래? 엄마 못 알아보겠니?”
여자는 간절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아줌마가 누구신데요? 우리 엄마는 어딨어요?”
이 무슨 난감한 상황인가. 여자는 자기 아들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아들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인신매매범일 수도 있다. 여직원에게 아이에게 엄마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냐고 질문했다. 여직원은 들어오기 전에 아이에게 들었다던 엄마의 인상착의는 이 여자와 똑같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고 한다. 이름은 준서가 맞느냐고 물어보니 그건 맞다고 했다. 나는 여자에게 ‘남편분은 안 계십니까?’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예상한 대로 그녀의 대답은 ‘혼자 키워요.’였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여자는 아이가 어렸을 때 실수로 뜨거운 물을 흘려 아랫배 밑에 약간 화상 자국이 있다고 했다. 여직원이 확인해보니 그녀의 설명대로 화상 자국이 있었다. 나는 여직원더러 아이를 데리고 나가 있으라고 하고 여자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밖에 있던 아이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모자의 대답은 같았다. 다니는 초등학교, 나이, 생일, 등등. 이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자 나는 점점 아이의 말보다는 여자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인신매매범들은 아이의 발사이즈, 친한 친구 이름, 부모 주민등록번호, 등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이의 부정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이대로 이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후에 진짜 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왔을 경우 잘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매스컴의 수많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여직원에게 밖에 있는 아이에게 엄마 휴대폰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전화를 걸어 보아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여자의 핸드백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가 찾고 있는 엄마는 이 여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좀체 이 여자를 자신의 엄마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이쯤 되자 아이의 부정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그저 엄마와 사소한 다툼 때문에 떼를 쓰는 것이라 판단했다. 간단히 풀릴 줄 알았던 일이 골치 아픈 일이 되자 내게 있었던 여자에 대한 동정심 따윈 완전히 사라졌고 얼른 이 귀찮은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우린 사무실을 나와 둘만의 대화 시간을 갖게 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함께 사무실에서 나왔다. 마침내 둘은 화해한 것이다. 여자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그들이 사무실을 떠나고 한 30분이 지났을 때쯤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찾는다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아까 아이가 말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린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우리 준서 좀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