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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집실

불미스러운 사고

by 설다람

공항은 남자였고 승객은 여자였다. 승무원은 풀이었고 기내식은 수프였다. 비행열차에 탄 손님들은 자신이 준비해온 베개를 꺼내어 잠을 청했다. 승무원들이 그들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다음 도착지까지 6시간이 남았다. 승무원은 교대로 돌아가며 객실을 순찰했다. 기장은 초콜릿이었는데 부기장인 커피에게 운전을 맡기고 단잠에 빠졌다. 비행열차가 추락하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실 부기장인 커피가 잠들어도 상관없었지만, 커피는 눈을 감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들만 공중에서 일어났다. 보통 일어나는 일은 승무원의 몸에 잡초의 씨앗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승객이 잠에 곯아떨어져 잠꼬대를 하거나 이불을 걷어차는 일이었다.

종종 몽유병 환자가 있어 잠든 채로 일어나 돌아다니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승무원들은 일어날 만한 일들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았기에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후에 비행열차가 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낙하했을 때 승무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추락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추락이 가능한 지역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잊어버린 것이다. 추락이 가능한 지점에선 추락은 가능한 일이었고 가능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눈을 뜬 부기장은 다급히 기장을 깨웠지만 기장은 비행열차가 추락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승객들은 갑작스러운 낙하에 승무원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승무원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안심하세요. 이곳에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였다. 승객들은 놀라움에서 깨었다가 승무원의 말을 듣고 다시 곤한 잠에 빠졌다. 추락 속에서 놀라고 있는 것은 눈을 뜨고 있는 커피뿐이었다.

커피는 기내 통신을 연결해 지금 비행열차가 추락하고 있다고 승객과 승무원 모두에게 알렸지만 다들 추락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믿었다. 잠을 방해하는 성가신 부기장의 방송에 몇몇 승객들이 짜증을 냈고 승무원은 부기장에게 기내 방송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커피는 다른 이들을 깨우기를 포기하고 추락을 즐기기로 했다.

실은 커피도 처음 겪는 추락이라 왠지 모를 흥분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대로 계속 떨어진다면 과연 비행열차는 어느 정도까지 추락할 것인가. 커피는 머릿속으로 비행열차의 낙하 속도를 계산했고 공기 저항력에 대처할 때 비행열차가 취해야 할 자세를 계산해보았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물체의 운동량을 실제 순간 속에서 계산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기에 커피는 추락이란 단어가 지닌 공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다만 커피가 알고 있는 것은 비행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고 있다는 계산 결과였다. 물론 계산 결과는 공기의 저항력과 구름의 상태가 변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했지만, 그것 또한 커피의 계산 속에 있었다.

몽유병 환자를 상대하느라 지친 강아지풀이 승무원 대기실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푸념을 내뱉었다. 젠장 저런 녀석은 기차에 태우지 좀 말라고. 왜 또 몽유병 환자야? 그래, 이젠 걸어다니다 못해 복도를 있는 대로 뛰어다니더라구.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냐? 네가 갔을 때 그 사람이 날뛰어서. 승무원 대기실의 모인 풀들이 일제히 킬킬대며 웃었다. 부기장이 방송하는 거 들었어? 열차가 떨어지고 있다던데. 카페인 중독으로 환각이라도 보이나 봐. 도대체 이곳에 정상적인 것이 없어. 일단 너부터. 그들은 또 한 번 일제히 킬킬대며 웃었다. 도착 예정 날짜가 언제였어? 열하나 하고도 스물다섯 번째 밤이 지나면. 한참이네. 여기서 살림이나 차릴까 봐. 뭐 저번에 만났다던 그 민들레랑? 좋은 풀이었지. 강아지풀은 회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 대기실 밖에서 몽유병 환자가 난동을 부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모두 가만히 눈치를 보았다. 별 수 없군 내 담당이니까. 강아지풀이 일어나 문을 열고 몽유병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은 풀들 중 하나가 말했다. 정말 좋은 녀석이야. 정말 좋은 녀석이지. 저 녀석이 꼭 민들레와 잘됐으면 좋겠어. 그 말을 마치고 다들 피로에 눌려 고개를 숙이고 쪽잠을 청했다.

커피가 계산한 대로 정확히 3시간 뒤에 비행열차는 구름 지대를 뚫고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눈앞으로 울렁이는 바다의 물결이 보였을 때 커피는 말했다. 거 봐 내가 떨어진다고 했잖아.

잠든 기장과 승객, 대기실에 모여 쪽잠을 자던 승무원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을 잃었고 몽유병 환자를 제지하던 강아지풀만이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을 실제로 느꼈지만 그것은 실로 찰나여서 느끼지 않은 것과 같았다. 비행열차는 그렇게 추락했다.

다음날 신문들은 사망자 수를 보도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미스러운 사고라고 했다. 승객의 유가족들이 죽은 자들을 애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음날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페이지에서 유가족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길에선 민들레가 홀씨를 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왔다. 이제 여행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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