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소는 오디오에 CD를 넣었다.
앨범 표지에는 비니를 쓴 드러머가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Orbital Memory'
3년 전 자신이 낸 앨범이었다. 구성은 트리오였고, 드럼에 지니 세인, 베이스에는 로노 트리가 함께했다.
완벽한 트리오였다.
밀접하게 다가오면서도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베이스,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드럼,
모자랄 것이 없는 조합이었다.
만족스러웠고, 황홀했다. 셋은 감정 공동체였고, 일관성 있는 하나의 목표 지점을 향해 움직였다.
어렴풋이 그렸던 계획에서는, 색이 다른 구성으로 한 장의 앨범이 더 나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세인을 죽인 것은 자신이었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을 마치고, 스키를 타러 가자고 세인이 제안했다.
열대에서 온 사람답지 않게, 세인은 추위와 눈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따뜻하게 얼려진 듯한 세인의 라이드 소리와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폭설이 시작되었다.
예고 없는 재난이었다. 정지하기 위해 방향을 돌리던 세인이 중심을 잃고 비탈로 쓰러졌다,
간신히 턱에 걸려 있던 세인을 손으로 잡고 일으키려 했을 때, 눈에 쓸린 바위가 튕겨 나왔다.
정확히 손이 손을 잡고 있는 위치로.
본능적인 공포감이 혜소의 손을 몸 가까이로 잡아당기게 했다.
본능 앞에, 감정 따위는 없었다.
허공을 잡은 세인이 뒤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죽였다.
손이 아까워서. 다시 피아노를 치지 못할까 두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