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김윤식 시인 생가와 세계 모란공원을 가다.
영랑생가, 세계모란공원
주소: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전화: 061-430-3377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휴무일: 연중무휴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강진 군청 주차장, 자체 주차장
주차요금 : 무료
필자는 신학생 학사과정인 현장체험을 하기 위해 강진에 머무르고 있다. 강진, 청자와 선비의 도시, 다산 정약용이 유배 온 곳! 언젠가 다산 초당을 가보리라 다짐하며 강진에 짐을 풀었다. 어느 날, 다산 초당 생각밖에 없던 나에게 같이 지내는 선생님들이 김영랑 시인의 생가를 추천하였다.
영랑(永郞) 김윤식(金永郎), 본명인 김윤식보다 필명이었던 김영랑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외 여러 시들을 동인지 ‘시문학’에 연재하여 남도의 정서를 전통적 운율로 읊어낸 순수 서정시를 남겼다. 필자는 역설법이라는 표현법을 설명한 국어 교과서에 ‘찬란한 슬픔을 기다린다는’ 구절로 접하였지만 영랑 김윤식이라는 사람이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다가 주말에 장을 보러 가던 나는 영랑 시인의 흔적이 강진 상가 및 마을 담장 곳곳에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과 호기심에 이끌려 3월 18일 금요일, 김영랑 생가에 답사를 가보기로 하였다.
영랑생가는 강진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차로 2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강진 구청 뒤쪽에 있어 길을 찾기에도 편하다.
영랑생가 입구에서 영랑생가 쪽으로 올라가면 보도블록과 담장에 시인에 대한 소개와 시 구절들을 적어놓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시인의 발자취를 느끼며 시인의 삶과 터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답사를 간 당일 날씨는 비구름이 있어 맑은 하늘은 보지 못하였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이었다. 생가 입구에서 10분여를 걸어 시인의 생가에 도착했다.
생가에 들어서자 안채, 사랑채로 구성된 한국 전통 가옥 구조가 나를 반겨주었다. 안채는 여성들이 주로 쓰던 방이고, 사랑채는 남성들이 주로 쓰는 방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처럼 남과 여의 주거 공간을 분리하던 조선시대 주거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가 곳곳에 김영랑 시인의 시를 새겨놓은 돌들을 발견하였다. 생가를 둘러보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시들을 발견하였다.『모란이 피기까지는』시를 새겨 놓은 돌 옆에는 모란이 심겨 있었다. 모란의 개화시기가 4~5월인지라 답사 당일에는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가 있었다. 아직은 꽃이 없는 작은 봉우리를 보면서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였다.
생가입구를 지나 안채에 다다른 나는 안채 뒤편에 대나무 군락이 봄바람을 맞아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장독대와 함께 오래된 나무가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었고, 안채에 들어서자 부엌, 부엌 옆 방, 그리고 안방이 딸린 우리나라 전통 가옥 구조를 엿볼 수 있었다.
부엌에는 불을 피우기 위해 사용하였단 풍구가 있었고 부엌 옆 작은 방에는 기물들이 놓여 있었다. 안방에는 영랑 시인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고, 안채 옆 장독대에는 언제부터 심겨져 있는지 모를 고목 한 그루가 고독하게 있었다.
안채 뒤쪽으로는 ‘세계모란공원’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대나무 군락이 차가운 바람과 만나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원으로 올라갔다. 세계모란공원은 모란을 비롯하여 여러 꽃과 가로수들로 조성을 해 놓고 방문객들이 걷기 좋은 길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모란이 4월에 피는 꽃이고 답사 전날 비가 온지라 비 온 뒤 쌀쌀한 날씨에 꽃들은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건 사계절 모란원이었다. 사계절 모란원은 봄에 개화하고 3~5일밖에 못 피고 져버리는 모란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온실 안에 모란과 여러 꽃들을 심고 조성해놓은 곳이었다. 온실에 가까이 가면서 머릿속에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 겨울에 수박이 먹고 싶어 떼를 썼고, 어머니가 비닐하우스 수박을 사 오자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겨울에 수박이 나는구나”하면서 신기해하셨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잘 조성해놓은 온실 안에서 바나나,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도 심을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온실 안에서는 ‘세계모란공원’이라는 이름에 맞게 우리나라 토종 모란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란들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개화 후 져버리지는 모란이지만 운이 좋게도 만개한 모화를 볼 수 있었다. 중국 모란, 프랑스 모란, 그리고 한국 토종 모란이 있었다. 김영랑 시인이 기다리던 모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꽃이었고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분명 아름다웠다.
고려 말 승려 일연이 쓴 삼국사기에서는 모란과 관련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이 당나라 황제에게 받은 화폭에 그려진 꽃이 모란이라고 한다. 그림 속 모란은 아름답게 피었지만 향기가 없어 벌과 나비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당나라 황제가 자신이 신라의 왕이 된 것을 비꼰 것이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모란에는 분명 깊지만 낯설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있었다. 따뜻한 온실 안에서 자신만의 향기를 내고 있는 모란을 보며, 수려한 빛과 향기를 뽐내는 모란을 기다리는 시인의 감정이 느껴졌다.
온실을 나와 조금 올라가니 강진읍 전경이 보였다. 그리고 읍내가 잘 보이는 곳에 영랑 시인이 앉아 있었다.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곳을 보면서 시상을 쌓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옆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문이 있었다. 생가 안에서 투박한 돌에 있던 시와 다르게 세련되게 정돈된 시를 보며, 아직은 피지 못한 바깥의 모란들이 피기를 바라였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