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날이 오긴 오는구나. 육아로 힘들 땐 문득 기다리며 설레기도 했던, 설레하던 나를 자책하기도 했던, 1년여의 시간은 치열하게 흘러갔고 드디어 내일이면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회사에 가는구나. (결국 하이힐의 로망은 3일도 가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잠을 설치지 않고 개운하게 깨서 전날에 했던 예행연습대로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했다. 그렇다. 예행연습까지 필요할 정도로 나로서는 그리고 우리 가족으로서는 중요한 이벤트였던 나의 복직. 아침에 정신이 없을 것 같아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다 메모해 두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 사과 깎아놓기
- 어린이집 가방 챙기기 (간식, 그날의 식단 보고 알러지 있는 음식 있으면 메모지에 전달하기)
- 쌀 씻어놓기
- 간식 챙겨놓기
정신 없을 것을 대비해 조금 일찍 일어났더니 걱정했던 것보다 꽤나 여유롭다. 이제 출근 전 마지막 중요한 관문이 남아있다.
아기에게 엄마 회사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기.
이 관문에서 많이들 무너진다고 하여 마음을 단디 먹고 인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운다. 아주 서럽게 운다. 평소에는 엄마가 바로 앞에서 사라져도 소 닭보듯 하던 녀석인데 엄마가 12시간 뒤에 온다는걸 아는걸까.
시간을 오래 끌면 안될 것 같아 인사도 길게 하지 않은채 문을 나섰다. 문틈으로 우는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생각보다 무던했다. 결국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워킹맘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 워킹맘 본인도 나를 불쌍하게 느끼는 태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생색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가가 안쓰러워서 그 한가지 이유로 눈물이 났겠거니 생각하고 싶다.
육휴 후 복직하면 그렇게 원인모를 병에 걸린단다. 주변에는 목에 혹이 났다는 사람, 한달동안 몸살로 고생했다는 엄마.. 피부가 뒤집어져서 고생한 엄마도 있다.
얼른 적응하려고 발버둥을 치며 중간중간 아가, 또 친정 엄마아빠가 자주 눈에 밟힌다. 힘드시진 않을까, 아기는 잘 놀고 있을까 (엄마 찾진 않을까에 대한 걱정은 안한다. 잘 안찾으니까) 어린이집 알림장 알림이 울리자마자 사진을 보며 피식피식 거리고 어떻게 놀았는지, 낮잠은 잘 잤는지 체크한다.
어쩔 수 없이 퇴근시간에 예민해지더라. 퇴근이 늦어지면 그만큼 봐주시는 분들이 힘드실테니.. 복직 하루만에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씁쓸하다.
퇴근하고 집에와서 오늘은 어땠는지 새로운 팀은 어떤지 얘기 나누며, 아기 목욕을 시킨다. 목욕은 힘든 일이니 웬만하면 내가 하려고 한다. 여느 엄마가 그렇듯 같이 보내주지 못한 시간이 미안해 더욱 오버해서 반응해주고 그리고 더욱 예쁘다. 조금은 늦게 잠들어줘도 괜찮을 것 같다. (휴직 중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산책도 하고 재웠는데 뭔가 일이 다시 시작된 느낌이다.
집으로의 출근이라는 표현이 갑자기 훅 와닿는다.
집안꼴이 난장판… 더러움을 참는 능력은 편하게 살려면 필수인데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이 때가 되면 또 멘붕에 빠질 것 같아, 아가 재우고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둔다.
- 설거지하기
- 어린이집 가방 정리
- 아기 반찬 챙기기
- 장난감 정리
- 빨래 돌리기
- 그리고 책 보거나 글쓰기 (설마...)
복직하면 너무너무너무 힘들 것 같았다. 솔직히 이 일을 하루에 다 할 수 있는걸까 생각했었다. (이전 글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심각한 엄살쟁이) 엄마로서, 김대리로서 하는 일 말고 꼭 나를 위한 시간을 사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책 보거나 글쓰기 시간을 마련해 두려고 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라는 진부한 표현보다는 일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알차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시간 속에서 스러져 가는 하루가 아쉬워 기록하고 나누고 감사하고 싶었다.
복직하던 날.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
아프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