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조심 부부의 10대 늬우스!

by 다니엘라


2020년 12월 29일.
한 해를 이틀 남겨두고
남편과 함께 우리 부부의 올 한해 [10대 늬우-스]를 뽑아보았다.
(우리 남편은 조ㅇㅇ, 나는 심ㅇㅇ 이기에 ‘조심 부부’라는 호칭을 붙어보았다.)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나와 남편이 각각 같은 늬우스를 각자의 시각에서
기록해 보기로 했다.
(남편이 글쓰기를 완료하면 링크를 걸거나, 아래에 내용을 첨부할 계획이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360여 일을 보냈지만,
2020년은 단순하게 살 수밖에 없는 한 해였다.
코로나가 있었고, 코로나의 확산 정도에 따라
우리의 활동반경이 넓어지거나 좁아졌다.
전 세계가 비슷한 아픔을 겪는 것을 보며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누구나 쉽게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해외여행을 갈 수도 없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한 해를 보냈다.
세계여행 하나만 두고 봤을 때는
하향평준화된 한 해가 아니었던가 싶다.
덕분에 새로운 개념의 방구석 여행이니,
방구석 캠핑이니 하는 개념들도 생겨났고...


자, 그러면 지금부터~
힘든 만큼 특별했던 2020년,
조심 부부의 10대 늬우스를 소개합니다!!


1. 첫째 아이의 첫 등교.
첫째 이삭이가 올해 드디어 초등학생 형아가 되었다.
학부형이 된다는 것이 많이 두려웠는데,
되고 보니 이전까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전과 달리 아이의 학습에 대한 고민은 조금 늘었다.

아이가 첫 등교 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기특하고, 멋지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날이었다.
1학년 2반이라는 팻말 앞에 모여 서 있다가,
선생님을 따라 복도 끝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주책맞은 눈물이 흘렀다.
감격과 기특함, 그리고 감사가 하나 되어
엄마의 눈물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아이의 첫 등교일, 잊을 수 없이 감사한 날이었다.





2. 둘째 아이의 선교원 첫 등원.
둘째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에서 선교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원래 등원 일보다 훨씬 늦게 등원을 시작했지만,
아이의 첫 등원 장면은 4년 전 형의 등원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 작아 보이고,
더 아기 같은 둘째 아이를
선교원에 보내는 마음은 조금 달랐다.
너무 귀여운데, 안쓰러운 마음도 더해졌다.
그리고, 코로나로 집에 있던 형이
동생의 출발을 확실하게 응원해 줬다.
하원 하는 동생에게 친구를 사귀었는지,
친한 친구는 누군지,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동생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둘째 요한이의 첫 등원에 대한 감격뿐만 아니라,
형이 먼저 경험한 것을 동생에게 알려주고,
형이 동생을 기특해하는 모습이 깊이 기억에 남았다.





3. 남편의 [리얼 클래스] 1년 완주.
꾸준히 하는 거라면 뭐든 잘 해내는 남편이
올해, 어렵다는 리얼 클래스 1년 수강을 완주해냈다.
막연히 해낼 거라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진짜 해내다니... 대단하다 정말.
꾸준함 하나는 제대로 보여주는 남편을 보며
긍정적인 자극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수강료를 돌려받은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
올해도 같이 도전을 하자는데,
완주에 누를 입힐까 봐 자신 있게 도전장을 못 내밀겠다.


4. 남편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관한 글을 포스팅했고,
그 포스팅 덕분에 네이버 애드 포스트에서
하루에 6,000원이 넘는 광고비를 받았던 일.
남편과 함께 블로그에 글쓰기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꾸준히 활동을 한 후 애드포스트를 신청했다.
도전 두 번째 만에 애드포스트 서비스 허가를 받았고,
그 후에는 남편과 수익금이 얼마나 나왔는지를 공유해왔다.
사실은 공유했다고 하지만, 자랑에 가까웠다.
매일 꾸준히 뼈를 깎는 심정으로 글을 쓰는 나와 달리
남편은 가볍게 세너 줄짜리 글도 썼고,
(내 눈에는) 늘 심혈을 기울인 것만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적게는 4원에서 많게는 100원 내외의 수익을 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슬의생 포스팅과 같은 대중을 사로잡는 아이템으로 한 번씩 큰돈을 벌어들였다.
하루에 6천 원이 넘는 수익을 낸 날도 남편은 애드포스트 캡처 화면으로 자랑을 해왔다.
남편에겐 올해의 10대 늬우스로 들어갈 만큼 기쁜 일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사실 질투가 났지만,
같은 호주머니를 차고 사는 부부이기에 결국은 기쁜 일로 남기기로 결심했다.


5. 브런치 작가가 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로망이 있었다.
감성이 돋는 글들이 무한하고,
색감도 예술적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을 사로잡아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책을 출간하는데 한 발짝 더 가까워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 만에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
한참 동안 느끼지 못하고 살던 성취감을 느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책을 한 권 출간한 것도 아니고,
인기 작가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꾸준히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엄청난 글쓰기의 동기부여제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2021년에는 또 새로운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소망해 본다.




6. 월간 [좋은생각] 12월 호에 글이 채택되다.
올해 12월 좋은 생각에 응모했던 글이 채택되었다.
아이의 코로나 시대 학교 생활에 관하여 쓴 글이었다.
진심을 담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
진심이 읽혀서 채택된 글이다.
가문의 작은 영광이었고,
채택 연락을 받았을 때의 마음은
입사 합격 소식을 받은 것만큼이나 기뻤다.
2021년에도 도전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7. 울산에 마음 편한 친구가 생겼다.
올 한 해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좋은 인연이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할 때
공동 육아의 힘을 빌려야 하는 날들이 생겼다.
옆 단지 아파트에 살며,
아이들은 같은 어린이집, 같은 선교원을 나왔지만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아이 친구의 엄마이다.
코로나 덕분에 공동육아를 몇 번 하게 되고,
출근 때문에 아이를 맡기기도,
그리고 그 집의 아이들도 맡아주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착한 인상의 마음씨 고운 아이 친구의 엄마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얌전하지만 밝은 사람이라 가까이하면 참 따뜻했다.
운동이나 산책을 즐기지 않는 내가
그 친구를 만나 함께 산책을 하고 운동을 했다.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편안한 친구가 생긴 것이
올해의 소중한 일들 중 하나로 남는다.


8. 목장 식구들에게 초대받은 깜짝 파티.
교회에서 우리 목장에 속해있는 목원들이
연말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한동안 온라인으로만 모이던 우리였는데,
마스크를 끼고 얼굴을 마주했다.
청년들을 위해 시에서 대여해주는 공간을 빌리고
목원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즐기며
행복한 파티를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귀한 시간에, 귀한 선물에
정말이지 큰 감동을 받았다.
오래오래 잊지 못할 감사한 밤이었다.



9.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하다.
지난 5월 아랫집으로부터
층간 소음으로 힘들다는 편지를 받았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고,
아래층 가족분들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다 보니
결국 층간소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단은 아이들을 조심시켰다.
우리 부부도 조심했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조심시켰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애를 썼지만,
11월에 또 한 번의 편지를 받았다.
노력을 했음에도
또다시 소음을 호소하니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마음도 상했고,
아이들에게 조금 덜 스트레스를 주며 살고 싶었다.
서로가 힘든 것 같아
우리가 1층으로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1층 매물은 잘 나오지 않았고,
집값도 비정상적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실과 주방에 깔아놓을 층간소음 매트도
주문을 해 두었다.
10대 늬우스 중 가장 슬픈 뉴스긴 하지만,
층간소음 문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슬픈 소식이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부디 새해에는 층간소음으로 서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 본다.


10. 아이가 높임말을 쓰기 시작하다.
부모님 공경 프로젝트의 하나로 높임말 쓰기 훈련을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아이는 금방 적응을 하고 받아들였다.
지금은 완전한 높임말로 아이의 어투가 바뀌었다.
높임말을 쓰면서 더 고운 말들을 쓰기 시작했고,
태도도 더욱 예뻐졌다.
둘째 아이는 아직 훈련 중에 있지만,
시간을 들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높임말을 쓰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집에서부터 어른들을 공경하는 습관을 들이면
밖에 나가서도 타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들을
줄일 수 있다.
아리의 말과 습관이 바뀐 일도
올 한 해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여기까지가 올 한 해의 기억에 남는 10가지 순간들이다.
365일에 가까운 날을 살며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추려내는 일이 꽤나 재미있었다.
다가오는 2021년에도 웃으며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도록,
사랑하고 배려하며, 도전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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