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책보따리

by 다니엘라


우리 집에는 매달 책보따리를 풀어놓는 남편이 한 명 있다.
월초가 되면 편의점 도시락 만한 작은 택배 상자를
한 상자 혹은 두상자 씩 손에 쥐고 귀가를 한다.
그리고 무심하게 택배 상자를 언박싱하며
상자에 들어앉은 책들을 하나 둘 꺼내서 펼친다.


언박싱이라면 뭐든 좋아하는 나는
지나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남편 곁에 앉는다.
여러 권의 책 중 내 눈길을 끄는 책은
‘언제나’ ‘반드시’ 나오고야 만다.
때론 한 권, 때론 두세권...


이번 달에도 남편의 책보따리에서
취저 도서를 두권이나 낚아채 왔다.
남편도 나를 타깃으로 준비한 책들이
척척 들어맞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새 책을 맞는 순간은 즐겁지만,
사실은 여기에 문제가 조금 있다.


나라는 사람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을 다 읽어내고,
그다음 순서의 책을 집으로 들여 읽고 싶은 사람이다.


일단은 우리 집에 책이 무자비하게 쌓여 있는 것이 싫다.
게다가 보고 싶던 책을 실물로 영접하는 순간
설렘은 극에 달하고,
설렜던 그 책을 (다른 책 읽느라) 한참 못 읽고 뒀다가
읽으려고 다시 집어 든 그 순간
설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결국 무덤덤하게 책을 집어 들게 된다.
무덤덤한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어깨를 들썩이며 읽어야 할 책을
그저 그런 느낌으로 읽고 앉아 있으려니 영 아쉽다.
나의 ‘새책 설렘권’을 빼앗긴 느낌이랄까...ㅎㅎ


한 가지 이유를 더 달자면,
마음속의 서재에 읽고 싶은 책이 쌓여 있는 건
마음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눈앞에 책이 여러 권 쌓여서
읽힐 순서를 기다리는 건
한편으로 든든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밀린 방학숙제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의 책보따리가 반가우면서
동시에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남편의 이번 달 책보따리에 있던 책 중 한 권인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리뷰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책보따리 썰을 너무 길게 풀어 버렸다.
미안하지만, 리뷰는 뒤로 미루겠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이렇게 남편의 책보따리에 대해
한참을 불평하고 썰을 풀어놓고 있으면서도
월초가 되면 또 습관처럼
남편의 책보따리가 궁금해진다.
휴-!
갈대보다 더 쉽게 두 마음 세 마음으로 흔들리는
나와 함께 사는 남편이 짠 하게 느껴지지만,
새책을 받았을 때
나만큼 물개박수치며
리액션을 잘해주는 사람이 어딨냐며
나인지 남편인지를 위로해본다.


아무래도 불평보다는
감사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입술에서는 남편의 책보따리에 대해서
팔랑팔랑 작은 불만을 쏟아놓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 깊은 골짝에서는
꼬박꼬박 영양제 챙기듯이
책을 챙겨다 주는 남편이
참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번 달엔 밀린 책 부지런히 읽어내고
다음 달 보따리에서도
‘취저도서’가 소리 소문 없이 발견되기를
스리슬쩍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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