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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an 17. 2021

의심을 털어내야 진짜 행복이 채워진다.(feat.쿠바)


2007년 7월, 대학원 1기를 보내고 있던 때-
(와- 너무 옛날이야기..)
해외의 이민 후손에 관한 연구단 활동으로
남미의 쿠바로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해외탐방이 대 유행을 하고 있었고,
한인 이민 후손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던 때였다.
당시 분위기에 발맞춰
친구들과 팀을 짜서 탐방계획서를 준비했고,
우리는 쿠바팀 탐방단원으로 당당히 낙점되었다.


쿠바에서는 이민 후손 분들을 탐방하기도 했지만,
탐방기간 앞 뒤로 하루 이틀씩을 더 추가해
쿠바 여행도 겸했다.
24시간이 넘게 걸러 도착한
쿠바의 하바나(Havana)에서 첫 이틀은
몸도 마음도 고되기만 한 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쿠바 관련 여행 서적을 너무 많이 읽고 말았다.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아간다는 사람부터,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가 사진기를 빼앗긴다는 이야기,
그리고 화폐를 교환할 때의 사기 수법 등
다양한 사기수법을 미리 학습하고 쿠바로 떠났다.


우리 팀이 쿠바 아바나(HAVANA-쿠바의 수도)에
도착했을 땐, 모든 사람이 사기꾼처럼 보였다.
단단히 경직되어 쿠바인들을 대했다.
택시비는 제대로 책정되고 있는지,
숙소의 사장님이 우리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지, 길거리의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러다 보니 더운 날씨에, 높은 습도까지...
여행 시작점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여행 둘째 날이었다.
숙소 근처의 광장에서 산책을 하며 벼룩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가 크고 배낭을 멘 중년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흔치 않은 동양인이라 희귀 동식물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우선 말부터 걸어오는 쿠바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와중에 또 나란 사람은
쿠바인이 우리에게 ‘대화비’를 요구할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그러나 중년 남성은 ‘대화비’ 따위는 요구하지 않았고
본인의 이야기만 한참 하다가 가던 길을 다시 갔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
경계태세를 갖춘 상태로 아바나의 명물,
말레꼰(방파제)을 걷고 있었다.
우리 팀 멤버는 세명이었고,
500ml 사이즈의 생수를 들고 다니며
병 입구에 입을 대지 않으려고
공중부양으로 물을 나눠마셨다.


말레꼰에서 철썩이는 파도를 구경하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초등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쿠바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호기심을 잔뜩 넣어
싱글거리며 다가왔다.
“Hola! 안녕!”
“Hola! 안녕!”
“Me regalas un poquito de agua?”
(나 물 조금만 줄 수 있어?)
“Um..... tenemos muy poquito de agua.....”
(우리 물 너무 조금밖에 없는데...)

물을 건넸다가 어떤 사기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에 거절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쿠바 꼬마들은 끈질기게(미소를 띤 채)
물을 요구했다.
결국
입을 대지 않고 물을 마신다는 조건으로 물병을 건넸다.


물병을 건네자마자
쿠바 꼬마들은 병에 입을 대고 나팔을 불며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하... 내 물....’
그렇게 일순간 작고 똘똘한 꼬마들에게
소중한 식수를 빼앗기고 허탈함이 몰려왔다.


나는 어느새
유럽인이 써놓은 ‘외로운 행성’ 여행책의 한 귀퉁이에
온 마음을 기울인 채
만나는 쿠바인마다 의심을 하는
못난이 여행객이 되어 있었다.


의심을 하면 할수록 여행은 무겁고 불행해졌다.
지나가던 중년 남성과의 짤막한 대화,
그리고 물병을 쟁취했던 쿠바 꼬마들과의 사건을 떠올리며
의심이 결코 더 나은 결과, 혹은 더 나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일이 생기려거든
의심 여부과 상관없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 생기는 것도
의심하고 경계한다고 해서
무조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깨달음이 있은 후
쿠바 여행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의심과 경계는 한구석에 고이고이 접어두었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고
애매한 것을 악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흘러가는 대로 쿠바의 모든 것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남은 쿠바 여행은?
두말할 것도 없이 즐거웠다.
우리 아이들을 이고 지고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기억들을 남겼다.


의심과 경계는
그저 내 마음만 무겁게 할 뿐
참된 안전이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낼수록
진짜 행복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대표 사진: 아바나(Havana)의 말레꼰(malecón)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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