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리모델링. 가난을 선택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by 다니엘라


아파트 리모델링은 오랜 꿈이었다.
신혼집을 마련하며 리모델링을 하는 부부들을 보면
신혼에 그게 어찌 가능한지가 궁금했다.
살던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를 하며
리모델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집도 마련했을 텐데 리모델링 비용은
어떻게 충당한 것인지 궁금했다.
리모델링을 척척 해내는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20년 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앞에 살던 누군가가 화이트 톤으로
적당히 리모델링을 해 놓은 집으로
이사했고 벽지만 새로 바르고 들어와
적당히 만족하며 살았다.


한 번쯤 예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새집으로의 이사나
살고 있는 집의 리모델링 중
그 어떤 것도 계획된 것이 없었다.



식기세척기 구매에서
리모델링을 계획하기까지.


그러던 중,
식기 세척기의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집안일에 소질이 있는 편도 아니고
뭘 하더라도 시간이 참 많이 걸리는 타입이라
워킹맘을 하며 글도 쓰고 하고 싶은 일들까지 하려니
언제나 쫓기듯 사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한마음이 되어 식기 세척기를 외쳤다.
이럴 땐 무조건 사는 거다.


식기 세척기를 사려고 보니
빌트인 방식은 주방 하부장의 개조가 필요했다.
하부장의 개조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다보니…
이번 기회에 주방 리모델링까지
함께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눈을 착 마주치며
주방 리모델링을 선뜻 결정했다.


리모델링을 하려고 마음먹고 주방을 살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낡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이번에 무조건 리모델링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몇 주간 설렘을 안고
주방 리모델링을 알아보았다.
주방 리모델링을 알아보다 보니,
욕실과 안방 붙박이장까지
패키지로 묶어 리모델링을 하는 서비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상담, 그리고 견적까지.


식기 세척기 구매에서 시작된 계획은
어느새 주방 리모델링에서
욕실과 안방 붙박이장까지 뻗어 나갔다.
본격적으로 업체를 알아보고 견적을 받았다.


인생 첫 인테리어 상담이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만 같았고,
이런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내가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인테리어 상담이 지루하지 않았다.
붙박이장 재질과 컬러를 고르고,
주방 상 하부장의 컬러와 구조를 선택하고
욕실 바닥재를 선택하며
나 자신이 대견하게까지 느껴졌다.


상담을 마무리하며 1차 견적을 받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헉! 소리 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할부와 관련해서
카드사에 문의해야 할 사항이 있어
주말을 보내고 결제를 하기로 했다.


나를 비추는 시간.


첫 견적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설렘과 걱정이 반쯤 섞여 들기 시작했다.
24개월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이 있어서
상담을 받고 견적을 냈는데,
결제 조건이 광고로 제공된 것과
조금 다르게 이야기가 되었고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커서
주춤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럼에도 도전해 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담은 가운데
정신이 번쩍 드는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가난해지지 말라.”
(존 리)

정말 우연이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 문구는 나의 마음에
고속직행을 해왔다.


모든 것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주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화이트 톤의 깔끔한 우리 집 주방은
여전히 쓸만했다.
낡은 곳도 있었지만,
사용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능 면에서도 하자가 전혀 없었다.


화장실을 다시 확인했다.
지난해 바닥 타일을 새로 갈아 끼우고
수전을 교체했던 것이 생각났고
여전히 쓸만한 욕실이었다.
좀 더 깨끗하고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는
리모델링을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안방 붙박이장.
이곳이야말로 손볼 데가 없었다.
붙박이장 구조는 아쉬웠지만,
너무나 멀쩡한 붙박이장이었다.


모든 것이 리셋되었다.
선명하게 리셋되었다.
남편을 불러 기쁜 소식을 전했다.
리모델링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인테리어 상담을 받고 나서도
한번 해보자는 굳은 의지를 보였던 남편은
리모델링 취소라는 말에
비로소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가난해지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집의 경우
약간의 필요에 더해
필요 이상의 허영심이 작용을 했다.
좀 괜찮아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꿈이
마치 절실한 필요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존 리 씨가 말하는 바로 그 케이스였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가난해지는 길을 택할 뻔했다.


힘들게 일 년 반을 모아 둔
펀드 통장을 가볍게 깰 뻔했다.
24개월 할부를 우습게 여길 뻔했다.
남편에게 24개월간의 카드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어줄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인테리어 상담을 받는 동안만큼은 충분히 행복했다.
상담을 받고 견적까지 받아 보았으니
인테리어 과정의 절반은 경험해 본 것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리모델링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았고
그래서 감사하다.


우리는 늘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받지 않은 월급을 이미 받은 것처럼,
갖지 않은 부를 이미 가진 것처럼,
그런 착각을 모으면
진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착각까지…


지금 내가 가진 것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남들이 누리는 것에 가치를 둘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붙잡아야 한다.


리모델링 해프닝으로
또 한 광주리의 삶의 지혜를 얻었다.
리모델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2021년 가을,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가난해질 뻔 한 함정에서 잘 빠져나온 나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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