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 구매, 아버님께 그걸 어찌 말해!

by 다니엘라



비상이다.
야단이 났다!
어제 아버님과의 통화 끝에
아버님의 마무리 멘트가 영 마음에 걸린다.
“그래 에미야~
다음 주쯤 내가 스케줄 연구해 볼게.”
(= 그래 에미야 내가 다음 주쯤 내려갈게 까꿍! ^^)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그다음 주엔
우리 집을 다녀 가시겠다는 뜻이다.
평소 같으면 아버님이 오시는 일이
마냥 즐겁고 반갑기만 할 텐데,
이번에는 형편이 좀 다르다.


아버님께는 아직 공개하지 못한
큼지막한 비밀이 있으니,
[그건 바로 식세기 이모님이 입주하신 일].
아버님이 알게 되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두근 반 세근 반이다.


아버님은 한 달에 한 번쯤 우리 집을 다녀 가신다.
오실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 주시는 것은 물론,
다림질과 싹싹 대청소, 그리고 설거지까지는 아버님의
고유 활동 영역이기에 경계선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처음에는 멋 모르고 팔이 떨어져라 손사래를 치며

“제가 설거지할게요!”
“청소는 저도 잘할 수 있어요.”
“다림질은 매일 조금씩 하면 괜찮아요.
(그리고 애비가 잘해요….).”

하시지 못하게 막아섰지만,
되돌아오는 아버님의 큰 목소리에
뒷걸음질만 여러 번을 했다.
몇 년간의 실랑이 끝에
이젠 가끔 용기가 날 때를 제외하고는
아버님의 고유 영역을 조용히 지켜 드린다.
가족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지난해였나.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로봇청소기를 사들였다.
워킹맘이지만, 글도 쓰고 책도 보고 딴짓을 좀 하려니
집안일을 도울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아침 출근 전 황금 시간을 지켜줄
로봇 청소기가 절실했고,
오랜 고민 끝에 로봇 청소기를 들였다.


아버님의 고유영역에 대한 1차 대침공이었다.
로봇청소기인 ‘터보’(애칭)를 들이고
아버님이 처음 집을 방문하셨을 땐
로봇 청소기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유선 청소기도 그대로 집에 있었고,
아버님이 계시는 3 - 4일간은 모른 척 놔두기로 했다.


결국 아버님이 먼저 운을 떼셨다.
“에미야, 저 동그란 비행접시 같은 건 뭐냐.”
“아… 그건 로봇 청소기라는 건데요….”
“쟤가 구석구석 청소는 못할 것 같은데 에미야.”
하시며 유선청소기를 쭈욱 사용하셨다.


아버님이 계시는 날
혹시라도 작은 방에 로봇청소기를 돌리는 날이면
아버님은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미야 쟤 좀 데려가. 내가 이따가 청소할 테니까.”
로봇 청소기를 살아있는 생명을 대하듯
이 방 저 방으로 쫓아내곤 하셨다.
로봇 청소기는 큰 갈등이나 실망 없이
아버님의 고유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우리 집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로봇청소기라는 긍정적인 앞선 예가 있긴 하지만
식기 세척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아버님이 설거지를 하실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기름기 묻은 건 전문가가 해야 되는 거야, 에미야.”
“설거지는 실력 없는 사람이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해야 돼, 에미는 저쪽으로 가 있어.”

아버님이 주방에 들어서시면 못 이기는 척,
항복하는 척 물러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진짜 진짜 전문가인
식기세척기가 우리 집에 둥지를 틀어 버렸으니,
원조 설거지 장인인 아버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가 궁금하다.
식기세척기를 들여 아버님의 고유영역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게 되실지,
아니면 이번에도 로봇청소기 때와 같이 쿨하게
그럼에도 설거지는 내가 한다! 하실지.


혹여나 아버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셔야만 하는 이유 역시
줄어들었다고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닐지
염려가 된다.
그 때문에 식기세척기 구매 사실을
미리 알릴 수도 없고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 해도
식기 세척기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이다.
아빠 앞에 결혼할 남자를 데려가는 것 마냥
심장이 콩닥거려 큰일이다.


우선 아버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지혜를 차곡차곡 모아보기로 한다.
언제 오시더라도
‘난 꼭 필요한 사람이야.’
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게
똘망똘망한 아이디어를 모아놔야지.


아니,
또 모른다. 반전이 있을지.
아버님이 식세기를 보자마자
만세를 부르실지도 모른다.
‘칠십 년 인생 설거지가 드디어 끝났구나…’
하시면서.


식세기와 아버님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이제 그만하고….

“일단 오세요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