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께 진실을 알리지 말라!

by 다니엘라


시아버님은 가족들 사이에서 이름난 절약가 이시다.
특별히 당신 자신과 관련된 물건이나 옷 등은 더욱 아끼며 오래오래 사용하신다.
반대로 자식이나 손주들에게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식과 손주들의 주변을 살피신다.


아버님이 한 번씩 우리 집을 다녀가실 때마다 계시는 동안 입으실 옷가지를 챙겨 오시는데 한참 전부터 아버님 양말이 영 마음에 걸린다. 스포츠 양말인데 너무 오래 신으셔서 양말이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양말 고유의 탄력이라고는 남아있질 않다. 뒤꿈치 부분과 발가락 부분은 처음부터 두꺼운 실로 촘촘히 엮여 있어 덜하지만 발등과 발바닥 부분은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헤질대로 헤져서 흡사 망사 양말을 연상하게 했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아직도 한~참 더 신을 수 있어.” 하시며 양말을 버릴 생각이 없으시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버님께 드릴 양말을 준비했다. 생신이나 특별한 날도 아닌데 양말을 선물로 드리면 안 받으실게 뻔했다. 혹은 받으시더라도 괜히 뭘 또 샀다고 야단을 하실 터였다.
남편과 지혜를 모아 ‘남편 회사에서 행사를 하며 받은 양말’로 해서 전해 드리기로 했다.
역시나, 예 상 적 중!
아들네 회사에서 받아온 거라 하니 아버님은 두말 않고 양말을 건네받으신다.


아버님께 작은 물건이라도 선물해 드리고 싶으면 반드시 ‘어딘가에서(특히 애비 회사) 받아온 물건인데 저희에겐 맞지 않으니’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새로 사는 것은 못마땅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물건은 결국은 받으시는 편이라 이 방법밖에는 없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드릴 때 안타깝게도 아버님께는 진실을 알릴 수가 없다.


러닝 셔츠를 다 떨어질 때까지 입으시기에 어머님께 허락을 받고 새 런닝을 사 드리면서도
“아버님 이거 애비 입으려고 샀는데 사이즈가 작아서요….”하며 아버님이 받으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아버님 모자가 너무 낡아서 색깔이 완전히 바랬을 때는 “애비 모자 사면서 하나 더 산 건데 이건 애비한테 안 맞아요. 비싼 것도 아니에요.”하며 말의 꼬리가 점점 길어진다. 어떻게 해서든 출구를 만들어 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하얀 거짓말 비슷한 것들을 자꾸만 하게 되니 조금은 난감하다.


지난 추석에 집에 넉넉히 가지고 있던 두툼한 욕실용 수건을 시댁에 나누어 드렸다. 오래간만에 맘 편히 나누어 드릴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수건을 정말로 회사에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물자 낭비를 상징하는 새 물건은 좋아하시진 않지만 아들 회사 로고가 박힌 물건들은 좋아하신다. 아들 회사 표 달력, 아들 회사 표 수건, 아들 회사 표 장바구니 등.


아버님의 오랜 절약 습관이 때론 지나치다 싶어 마음껏 해드리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후대에게 베푸시는 것만큼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시니 아버님의 행동 양식을 ‘사랑’과 ‘희생’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자녀들과 손주들에게는 최고의 것을 나누어 주되 아버님 당신은 스스로 ‘처리반’이 되어 쓸모가 덜한 것들을 집적 보강해서 쓰시거나 처분을 하신다. 자녀 입장에서는 속상하기도 하지만, 아버님의 행복한 표정을 엿보고 나면 결국 행복은 스스로가 정한 기준에 맞춰내는 게 정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생활 8년,
시아버님의 딸 같은 며느리가 된 지 8년.
이제는 생신 선물 정도는 새것이라도 기쁘게 받으신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 드리는 아버님과의 밀당을 할 때도 진실을 밝히고 드리지는 못하지만, 결국에는 받아주시니 감사하다.


이 모든 건 살아계시니 가능한 일들이다.
아버님의 고집스러운 사랑과 희생도,
자녀들과의 사랑의 밀당도
조금만 지나면 진하게 각인된 추억들이 되고 만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히 사셔서
고된 사랑의 여정을 함께 해 주시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