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7 아이말 정산
올해 4월인가 5월부터
우리 아이들의 귀여웠던,
혹은 기억에 남았던
말 주머니를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아홉 살, 다섯 살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종종 들어볼 수 있는 말들이라 크게 특별할 것도 없지만,
지나고 보면 분명 특별한 말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나고 보면 그리워질 것들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잊지 않고 지속한다면,
일 년에 서너 번쯤 기록하게 될 예정이다.
이름하여,
[아이말 정산]
6,7월 우리 꼬마들의
귀여웠던 말주머니를 풀어본다.
1) 다섯 살 난 작은 아이와 병원놀이를 하고 있었다.
피곤할 때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병원놀이라
그날도 어찌 한번 시간 좀 때워봅시다~ 하는 마음으로 놀이를 시작했다.
이럴 땐 환자가 되는 편이 즐겁다.
그럼에도 다섯 살 꼬마는 안다.
놀이를 서너 번 하는 동안 본인이 의사 역할을 독점한다 싶으면
이내 엄마에게 의사 역할을 양보하려 든다.
결국 엄마가 의사가 되었다.
아이를 눕히고 진찰하는 시늉을 했다.
“어디가 아프세요 환자분?”
그러자 아이는…
“골치가 아파요.”
“…응? ㅎㅎㅎㅎㅎㅎ”
아이는 골치가 아프단 말을 새로 배운 모양이다.
그래, 골치가 아픈 것도 아프긴 한 거니까.ㅎㅎㅎㅎ
2) 아이들의 방학 중 부득이한 상황에는
아이들과 함께 출근을 한다.
그날도 아이들과 함께 출근을 했고,
아침부터 밥도 간식도 부지런히 먹어댄 두 아이가
동시에 화장실로 향한다.
두 아이 모두 '큰 볼일'을 본다는데,
남자화장실에 둘만 가기는 무섭단다.
그래 그럼, 초대할게..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여자화장실 두 칸을
각각 차지하고 앉아 목적 달성을 위해 정진한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화장실 문 잠가볼래요."
하더니 변기에서 내려와 문 앞에 선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
아가의 포동한 쌍 바윗골에
아직 덜 떨어진 응아가 달려있다.
긴급상황이다!
이러다 떨굴라!
"요한아, 응가 붙었어 움직이지 마! 아우 어쩌냐 이거.."
하는데, 옆칸에 앉아있던 첫째 아이가
해맑게 이야기한다.
"엄마, 그거 제가 방법 알아요.
변기에 가만히 앉아서요 무릎을 탁! 치면 똥이 똑 떨어져요.
그냥 무릎만 탁 치면 돼요.
제가 해봤어요 엄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무릎을 탁! 치래.....ㅎㅎㅎㅎ'
그렇게 귀여운 큰 아이의 꿀팁을 마음에 잘 간직한 채
동생의 뒤처리를 말끔하게 해 주었다.
3) 얼마 전 첫째 아이가 미취학 시절 다니던
선교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혼잣말인 듯 내뱉었다.
"한빛 선교원이다!! 저기서 참 많은 걸 배웠었지..."
갑 분 진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라디오에서는 안예은의 '문어의 꿈'이 흘러나온다.
엄마는 그저 마음으로
아들의 추억여행을 응원하며
슬며시 음악 볼륨을 높여본다.
4) 선교원을 조금 지나니
몇 년 전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를 가리키며 작은 아이에게 이야기해 준다.
"요한아 우리 저기서 살았었어. 요한이는 기억 안나지?"
"응, 안 나요."
그러자 형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우리 저기에 살 때 요한이가 태어났잖아.
형아 다섯 살 일 때 요한이가 태어났어."
그러자 동생 왈.
"응 마저 형아.
그러고, 형아가 병원에서 나를 지켜줬잖아."
ㅎㅎㅎㅎㅎㅎ
2021년 초여름의 우리 아이들은 이랬었지-추억하며
아이들의 잔뜩 귀엽고 기특한 말들을 정산해 보았다.
아이들의 지난 말들만 기억해 보아도
아이들이 속도감 넘치게 자람이 느껴진다.
'육아도 힘들고
살림도 내 취향에 영 안 맞네.'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
[아이말 정산]을 들춰 보는 것이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구급약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행복이 뭘까
문득 궁금해지는 날에
아이말 결산을 펼쳐 본다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거라 믿는다.
단단한 긍정의 믿음 덕에,
내 귀여운 꼬마들의
[아이말 정산]을 오래오래 지속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