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이 밀려 8월의 중순이 지나서야 7월 아이말 정산을 해 봅니다. 지났어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지난날들의 말 모음을 짧게나마 기록해 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전에는 없던 총기가 생깁니다. 총기가 생기니 말실수도 적고 귀여움도 손가락 사이로 솔솔 빠져나갑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든 부여잡고 싶은 아이들의 귀여움을 두 아이 장가보내는 그날까지 잘 듣고 메모해 뒀다가 기록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ㅎㅎ
[7월 아이말 정산]
출연: 열 살 어린이, 여섯 살 어린이
#1 과일 아저씨
우리 아파트 후문에는 매주 화, 금요일에 과일 트럭 아저씨가 오십니다. 처음에는 혼자서만 오시다가 어느 날부터는 아내분과 함께 오십니다. 매일 아이를 등 하원 시키느라 아파트 후문까지 달려가고, 걸어가고, 차를 끌고 가기도 하는 저는 매주 화, 금요일에 과일 트럭 아저씨 부부와 스몰토크를 나누곤 합니다.
트럭 아저씨께 과일을 사서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과일 구매도 당연히 아저씨 부부 트럭에서만 구매를 합니다.
과일 아저씨가 오시는 날이면 우리 작은 꼬마도 자두를 사달라 고구마를 사달라(시즌별로 고구마가 나오기도 하거든요.) 참외를 사달라 하며 제 손을 트럭으로 끌어당기곤 합니다.
그리고 반가운 트럭 아저씨 부부를 뵈면 인사도 곧잘 한답니다.
그런데 여름의 어느 날부턴가 과일 아저씨께서 저희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자두를 쓱싹쓱싹 닦아 두었다가 하나씩 두 개씩 손에 쥐어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자두가 한창 나오는 몇 주간이나 그렇게 해주셨지요.
아이는 하원 시간 때마다 자두가 반가운 건지 아저씨 부부가 반가운 건지 인사를 깍듯하게 하였고요.
그날도 아저씨께 받은 자두를 양손에 든 아이와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제 얼굴을 빤히 쳐다봅니다.
“엄마 저 할아버지가 왜 자꾸 무료로 자두를 주지요?”
(아이 눈에는 할아버지가 맞지요..ㅎㅎ 손주가 넷인가 다섯인가 된다 하셨으니 실제로도 할아버지가 맞긴 하고요.)
“요한이가 무료라는 말도 알아?”
엄마는 아이가 무료라는 말을 아는데서부터 감동을 받아 버립니다.ㅎㅎ
“무료라는 말 아는데….”
“아저씨가 요한이한테 자두를 자꾸 주시는 이유는, 엄마 생각엔 첫 번째로 요한이가 인사를 너무 잘해서 예뻐서 인 것 같아.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과일 사장님이 요한이랑 친하다고 생각해서 선물로 주시는 것 같아. 마지막 세 번째로는 과일 사장님이 요한이가 자두를 맛보고 맛이 있으면 다음번에 엄마랑 자두를 한 번 사서 먹어보라고 주시는 것 같아. 우리 자두 먹어보고 맛있어서 산 적도 많잖아, 그치?”
“아, 그렇구나아….”
그렇게 아이는 궁금증을 풀고 그날도 자두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아이도 자꾸만 무언가를 값없이 건네받는 일이 궁금하게 느껴진 모양이에요. 조금 더 어렸다면 그저 덥석덥석 받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무료로 받고 느낀 물음표 덕분에 아이에게도 일상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심어 줄 수 있었답니다.
#2 형아의 마음
어느 여름날 저녁.
작은 아이가 유독 졸려 보이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형아가 숙제를 하는 동안 작은 아이를 먼저 침대로 데려와 동화책을 읽어주었어요. 역시 예상대로 아이는 두 번째 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내려가고 고른 숨소리를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아이가 일찍 잠들어준 덕분에 큰아이와 저는 오래간만에 둘이서 책도 읽고 오붓한 시간을 보냈지요. 한두 시간쯤 후 큰아이도 잠 잘 준비를 마치고 동생 옆에 누워서 엄마가 방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초저녁에도 땀을 흘렸던 탓에 가볍게라도 샤워를 하려고 물을 촤아- 하고 틀었지요. 잠시 후 큰아이가 욕실 문을 두드리더니 문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속삭입니다.
“엄마 쉿 ~쉿~!! 소리 작게 해서 씻어주세요. 요한이가 지금 자꾸 반응을 하거든요! 이러다 깨겠어요.”
하더니 살금살금 다시 안방으로 돌아갑니다.
엄마는 쉿쉿한 느낌으로 샤워를 얼른 끝내고 아이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꼬옥~ 아이를 안아줍니다. 동생을 생각하는 아이의 그 마음이 곱고 예뻐서 아이를 토닥이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동생의 반응’을 신경 쓰는 첫째 형아는 분명 막냇동생에게도 최고의 오빠가 되어줄 것 같아요. 제가 더, 더 많이 사랑해 주어야겠습니다.
#3 귀에 들리는 대로 배우는 한국어
한 달에 한 번 우리 집을 찾으셔서 사나흘씩 묵고 가시는 시아버님은 우리 꼬마들이 세수하고 나오면 반드시 머리를 2:8로 넘겨주시고는 말씀하십니다.
“그놈 참 인물 좋~~~~~다!”
그럴 때마다 며늘은 옆에서 “우리 이삭이 / 요한이 인물 좋지요 할아버지?” 하며 맞장구를 첨벙첨벙 쳐댑니다.
그러면 아버님은 뿌듯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으시며 또다시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곤 하시죠.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세수, 치카를 하고 잘 준비를 마치라는 지령을 내리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방긋거리는 얼굴로 머리카락은 2:8로 만들어오더니 저에게 묻습니다.
“엄마 나 인무리야?”
“ㅋㅋㅋㅋㅋ인무리?? 그래그래 요한이 인무리 맞아! 인물 조오타~!”
인물 조오~타 했던 말이 어느새 ‘인무리’ 라는 새로운 표현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작은 아이는 아직까지 한글이 서툴러 들리는 대로 말을 이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귀여운 실수도 종종 하게 되지요. 더 똘똘해지는 일곱 살이 되기 전에 아이의 재미난 말주머니를 차곡차곡 채워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