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육아. 주도적인 엄마의 안 주도적인 하루

by 다니엘라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주도적인 엄마다.

주도적인 데다가 목표 지향적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머슴형 마인드의 사람이라 살도 잘 안 찌고 같이 있는 사람이 종종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인간형이다.


엄마 라이프 만 9년째를 보내고 있는 나는 육아에 있어서도 주도적이고 과업 지향적인 편이다. 그런 탓에 우리 어린이들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평균치 이상의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올해로 열한 살이 되는 첫째의 겨울방학이다.

봄방학도 없이 3월까지 쭈욱 이어지는 쉽지 않은 방학이다. 하루 세끼 밥을 챙기고 학습을 챙기고 그리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다 보면 하루 해가 진다. 아이와 방학을 함께 보내느니 풀타임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덜컥덜컥하고, 이게 만약 대학교 동아리였다면 이미 탈퇴했을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종종 한다.


이 방학 생활 중에서도 에너지 다툼이 가장 많은 포인트는 ‘학습’과 관련된 것들이다.

아이는 방학 중 영어 도서관 학원과 태권도, 그리고 축구를 배우러 다닌다. 사교육으로 운동만 2종을 보내고 보니 체육인을 키우는 건가 싶기도 한데, 본인이 너무 좋아하고 아빠는 그런 아들을 또 더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운동에 열을 올리는 방학을 꾸려가고 있는데, 문제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수학 공부며 학원의 영어 숙제가 문제다.

다른 과목은 애초에 할 생각도 안 하고 간단한 수학 예습과 연산 문제집 한 장 정도만 함께 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주도했으니 아이는 엄마의 요청에 그저 ‘네’ 하고 응했을 뿐이긴 한데, 어쨌거나 이것도 약속이 아닌가. 오전 시간은 수학 공부를 (조금만) 하고, 오후 시간에 학원에 다녀와서는 영어 숙제를 하는 것이 하루치 학습 총량이다. 엄마인 내 생각에는 그리 많지 않은 학습량 같은데, 아이가 느끼기엔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총량과는 상관없이 그냥 하기가 싫은 것이거나.


하여간 목표 지향적인 나는 아이의 공부 습관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아이가 하루치의 학습을 끝내기를 원하고, 거기에다가 제대로 각을 잡고 앉아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예상하셨겠지만,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싶어 하고 미루고 싶어 하며 각을 잡고 앉아서 하는 공부는 더더욱 어려운 아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아이를 쫓아다니며 “자 이제 10분 후에 ‘엄마 학원’ 오픈이니 금방 모이자!” 하며 달래기도 하고 “자꾸 집중 안 할래? 집중 좀 해!” 하며 협박을 하기도 하며 시간을 빼곡하게 채우게 된다. 얼른 끝내고 아이에게 꿀 같은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엄마와, 엄마의 눈치는 보이지만 일단 휴식하고 나서 때가 되면 가능한 만큼만 공부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상충된다. 몇 주를 그렇게 아이와 씨름하며 보냈더니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고, 결국 아이와 일대일 면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간 느껴온 마음과 기대했던 바를 아이에게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이도 마음을 내보였다. 엄마가 기다려주고 믿어주면 할 텐데 엄마가 자꾸 하라고 해서 마음이 상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걸음 물러설 때가 온 것이다. 주도적인 엄마라 이제껏 아이의 무릎이며 뒤꿈치가 땅에 갈려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질질 끌고 왔다. 그런데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의 방식은 어찌 되었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많이 다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자비 없는 잔소리와 아이를 온전히 믿어주지 못함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안아주며 아이의 마음도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속도에 맞춘 ‘믿음’이었다. 뭐든지 빨리빨리인 나와는 달리 우리 아이는 지나치게 느긋하다. 그런 아이에게 다시 속도를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아이를 살리고 나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 주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매일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아이는 스스로 할 일을 끝내고 검사를 받고, 엄마는 하루 중 한 번 정도만 아이가 할 일을 하도록 알려주기로 했다. 반복적인 잔소리는 일단 중단이다.


그렇게 약속한 첫날이 어제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나 역시 나대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예상대로 오전 내내 책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고 종이 접기에만 몰두했다. 접고 오리고 붙이고, 그러다가 잘 안되면 종이접기를 개발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잘 되면 ‘난 역시 천재야.’를 외치며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시간을 보냈다. 책을 펼치지 않았고 공부를 할 생각도 하지 않으며 독서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접고 오리고 붙이는 아이를 보는 내내 열이 올랐다. 생산적인 일에 단 10분도 허락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몰래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한심한 놈’이라는 말을 네댓 번은 한 것 같다. 주도적인 내가 아무것도 주도할 수 없을 때 오는 답답함과 잔소리 금단현상이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따뜻한 밥이 들어가니 다시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식사 후 아이는 스스로 책상에 앉았다. 한 가지는 빼먹고 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목표 과제를 완성해 냈다. 아이 앞에서 내 마음이 너무나 작아졌다. 오전 내내 마음으로 아이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부끄러워졌다. 기다려 주기로 했지만 사실은 기다리기 어려웠고 표정관리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기 속도에 맞추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잘되지 않는다. 아이도 자기가 집중하면 숙제를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잠잠히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어렵다.

해냄과 기다림이 서로에게 어려운 과제였고, 완벽하진 않았던 하루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대로 해냈다. 서로에게 한 약속을 부족하게나마 지켜냈다. 앞으로 일주일간 같은 방식으로 방학을 보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잘 지켜질 경우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생각이다.


남들에게 자꾸 눈을 돌리고 다른 집 아이들과 마음으로 비교를 하다 보니 우리 아이는 느려 터지고 성에 차지 않기만 했었다. 그런데 길게 보고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도 양육태도는 변화될 수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와 각자의 색깔대로 자라는 법이다. 부모는 그저 방향을 잡는 일에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된다.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믿어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