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보면 가끔 훔치고 싶은 구절을 만날 때가 있다. 내 손끝에서 나온 글이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마음과 부러움을 살짝 넘어 질투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런 글들 말이다.
어쩜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어쩜 이렇게 멋지면서도 잘난 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게 글을 쓸 수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이게 바로 소질이니 천재성이라고 말하는 그런 건가 보다.
내게는 은유 작가의 글이 딱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은유 작가 말고도 몇몇의 손에 꼽는 작가가 있지만, 요즘 한창 만나고 있는 글의 주인은 은유 작가라 오늘은 딱 거기까지만.
그녀가 쓰기의 말들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글이 딱 내 마음 같다. 게다가 나라면 절대 쓸 수 없었을 기가 막힌 표현들까지 글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혹시 땅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이곳으로 가져와 옮겨 본다.
큰아이가 대학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친다. 정기 공연을 앞두고 있다며 여름방학 내내 늦는 날이 많았다. 그간 몇 번 공연을 했는데 나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아들 공연에 가야 할까? 가고 싶었다. 책상에 산적한 일이 발목을 잡았다. 글을 써야지 어딜 가? 마감이 빠듯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내년이면 동아리 활동을 접고 군대에 간다. 이번에는 꼭 가야 할 것 같았다.
쓰기의 말들_p.131(1)_은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왕좌왕. 내겐 익숙하다. ‘글 쓰는 나’와 ‘살림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다 글을 택하거나 번민하며 밥을 지었다. 글 쓰는 나로 살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가슴 밑바닥에서 불만이 솟구쳤다. 애들만 없으면, 살림만 안 하면, 작업실만 있으면……. 무수한 그랬더라면을 지어내며 한숨 쉰다. 그러는 와중에 또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가까운 존재를 밀어내며 글에 매달리려 하는가. 나는 진다.
쓰기의 말들_p.131(2)_은유
꽃집에서 꽃을 사 들고 공연장에 갔다. 홍대 앞 클럽. 입구로 새어 나오는 강력한 사운드, 공연장의 낯선 느낌이 감각을 일깨운다. 기타리스트가 단 배지의 ‘귀한 자식’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 기억을 불러왔다. 내 귀한 자식의 공연에서 귀한 자식이고 싶었던 내 과거의 일들과 조우했다. 그날 밤, 집으로 가서 ‘귀한 자식’으로 시작하는 글을 한 편 썼다. 글쓰기의 장애물(로 여겼던 일)이 디딤돌이 되었다. 나를 세계로 밀어내니 세계가 나를 글로 밀어준다.
쓰기의 말들_p.131(3)_은유
자발적 필사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잃을 것 같아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 본다.
자, 이제 따라 적어봤으니 푹~~ 자면서 데굴데굴 생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