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글쓰기에 관한 잡담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면 초등 5학년, 그리고 초등 1학년의 두 아이를 불러 모은다.
"얘들아 이제 각자 오늘의 할 일을 시작 하자!"라고 하며 아이들의 목덜미를 끌어당겨 식탁에 앉히고 각자의 눈높이 수학 공부와 간단한 영어 공부 등을 하게 만든다. 어떤 날은 얘들아 "할 일 해야지."라고만 이야기해도 자기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하지만, 어떤 날은 빈틈없는 강적과 만나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해가며 공부를 시킨다. 아이들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학습을 관리해주는 엄마 조교가 존재한다. 소위 습관 만들기를 위함이다. 아이들과 나는 '코높이 수학'이라는 이름의 엄마 공부방을 열어, 서로 미워도 했다가 한 팀이 되기도 했다가, 서로를 이뻐하기도 하며 그렇게 아이들의 공부 습관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관리자 역할인 나는 모래성같이 수시로 무너지는 아이들의 공부 습관을 보며 좌절의 감정을 수시로 겪지만 그럼에도 궁둥이 붙이고 앉아 공부하는 행위를 아이들에게 삼시세끼 밥 먹는 일처럼 당연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쓴다.
그러면 나는? 내 글 습관은 누가 관리를 해주는 걸까?
오랫동안 나와 내 주변을 연구해 본 결과, 사람이 혼자서 습관을 만들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끌어주고 밀어주기라도 하지, 다 큰 성인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강력한 동기 부여가 매일같이 펄펄 끓어오른다거나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등의 장치가 없고서는 도저히 습관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해야겠다. 해내고야 말겠다!'정도의 의지 만으로는 습관을 형성하는 일까지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건 대부분 나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도 명색이 오디오북으로나마 동화책을 한 권 썼는데 단권작가로 남아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졸작이 되더라도 칼을 뽑았으니 무도 썰고 당근도 썰고 고기도 썰어보고 이것저것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자꾸만 써야 한다. 오늘 같은 잡담을 숭숭 썰어 넣은 글이라도 꾸준히 써야 무언가가 만들어져 나온다. 쓰지 않고서는 졸작도 똥작도 명작도 세상의 빛을 보기가 어렵다.
소소하게 쓰고 다듬어 투고 비슷한 것을 해놓은 작품들이 있지만, 업무적 진도가 나가지 않고 그들의 운명도 흐릿해지다 보니 나의 작가적 삶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고 자꾸만 동력을 잃어간다. 무언가가 이루어짐과는 별개로 지속적으로 쓰는 것이 삶의 작은 목표였는데 어느 날부터 그 목표가 색깔을 바꿔가더니 결국 '이루어냄'이 없는 글쓰기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동력을 잃은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생활의 우선순위에서 한 칸 두 칸 뒤로 미루어지다 보니 쓰는 행위 자체가 힘겨워진 것이다. 매주 한편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연재 글 한편에 일주일을 건다.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찌 보면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한 훌륭한 장치인 것인데, 그 이상은 진도를 내지 못하니 늘 마음 한편에 무거운 숙제가 놓인 기분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글쓰기를 업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니 부담과 함께 글 쓰는 행위를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데, 돌봐야 할 삶의 조각조각들이 많고 그 모든 걸 잘 해내보려고 애를 쓰다보니 글쓰기는 조금 덜 중요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조금 단단한 핑계를 대 보자면 셋째를 출산하고 많이 달라진 삶의 규모와 바쁨 때문이었다.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와 생활의 촘촘함이 가슴 뛰는 글쓰기를 막아섰다.
원인은 확실하게 파악이 되었다. 육체적으로 곤해지니 글쓰기라는 생산활동을 펼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는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벗어날 것인지를 결정할 일만 남았다.
그간 잘 쓰지 못해 왔지만,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은 늘 있었다. 키보드 앞이 늘 그리웠다. 늘 잘 쓰고 싶었다. 글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 쓰는 시간이 여전히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면?
다시 써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손가락과 키보드의 만남을 주선해야 한다.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조금은 구구절절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글을 다시 쓰겠다는 이야기다.
다시 쓰고 다시 뿌듯해하고 내 글과 뛰어노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다시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가슴 뛰는 설렘을 느끼고 싶다.
발행하는 글뿐만 아니라 '골방노트(원고 투고용)'글도 부지런히 한 발짝씩 시작해 보고 싶다.
이 마음을 품은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다시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는 시간을 쪼개고, 인스타 그램에서 타인을 부러워하던 시간을 쏙 빼내서 글쓰기에 조금 더 시간과 마음을 허락하기로 한다.
글쓰기 오늘부터 다시 1일, 이렇게 또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