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5 - 나미비아를 떠나며
2017.05.07
나미비아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움을 안고 가야 할 마지막 날이 나와 내 친구에게는 나미비아에 대한 모든 정이 떨어지는 날이 되어버렸다.
우선 첫 번째. 우리는 공항까지 데려다 줄 픽업 차량이 몇 시에 오는지를 픽업 10분 전에 알게 되었다.
가이드와의 시간은 전날이 마지막이어서, 우리는 다음날 픽업이 몇 시인지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모른다고, 그 예약담당 직원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이 토요일이라 그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아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았고, 그 직원이 자기는 모르니까 담당 직원에게 확인해보고 우리 숙소로 전화를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 체크인을 하면서 리셉션 직원에게 혹시 전화가 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아서 결국 리셉션 직원을 통해 여행사에 전화해보았는데,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리셉션 직원은 우리 비행기가 오후 1시 25분에 출발하니 아마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에 올 것 같다고 그쯤에 맞추어 준비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오전에 다시 한번 확인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대략적인 시간은 예상이 되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건 상당히 성가신 일이었다. 일단은 10시 반으로 예상하고, 그에 맞춰 아침식사를 하고 짐 정리도 해두었다. 그 사이 리셉션 직원은 우리를 대신해 두어 번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결국 리셉션 직원도 참을성을 잃고 짜증낼 무렵, 드디어 여행사에서 연락이 와 10시 30분 픽업이라고 알려주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20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픽업 차량을 타고 가다 검문에 걸려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픽업차량은 일반 승용차였는데,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곳에서 경찰이 갑자기 차를 세웠다. 우리는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차에 붙이는 증빙 스티커와 관련된 것 같았다. 어떤 스티커가 누락되어 있어서 이에 대한 증빙이 필요하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운전자는 경찰 사무실에 가서 일처리를 얼른 하고 오겠다면서 차에서 내리고, 우리는 뒷좌석에 앉아 기다렸다. 차를 세울 때까지만 해도 비행시간이 꽤 남아 괜찮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운전자가 돌아오지 않아 이내 조급해졌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친구가 앉아있는 쪽의 창문을 두드렸다. 경찰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우리 운전자를 불러 세운 사람과는 옷이 조금 달랐다. 일단 창문을 살짝 내렸다. 그랬더니 '니하오'라고 인사를 하면서 여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단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고, 건들거리는 자세로 손을 흔들며 '니하오'라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는 경찰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경찰 행세를 하고 사기 치는 모습을 이미 몇 번 봐오고 당할뻔한 적도 있었던 나는 일단 경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여권이 왜 필요한지, 검사를 왜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미안하지만 기다렸다가 우리 운전사가 오면 그 사람이랑 얘기하라고 했고, 친구는 창문을 다시 올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차 문을 확 잡아당겨 열었다. 내 친구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은 함께 소리를 지르면서 고압적으로 여권을 당장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화가 나서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우리는 여권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실랑이 벌이고 있는데 어떤 여자 경찰이 다가와서는 무슨 문제가 있냐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이렇게 여권 검사를 갑자기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본 것인데, 이 사람이 다짜고짜 문을 열고 우리를 윽박질렀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여경은 미안하다면서 원래 이곳은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 신분 검사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케냐 나이로비에서 공항 갈 때 보니, 그곳은 아예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에 검색대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런 걸 보는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에서 내렸다. 이런 비슷한 수법도 보았기 때문에 여경도 제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차에 앉아 여권을 창밖으로 건네주었다 도난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내려서 건네준 것이다. 여경이 우리 여권을 다 확인한 뒤 우리는 바로 차에 다시 올라탔다. 그녀는 끝까지 우리에게 불쾌함을 줘서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하면서, 나미비아를 떠나는 날인 것 같은데 부디 좋은 기억만 안고 가기를 바란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래서 기분이 많이 풀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끝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두 가지 사건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사건. 운전사는 우리 여권 검사가 다 끝나고 여경이 우리에게 사과를 할 때쯤 돌아왔다. 드디어 다시 출발할 수 있어 긴장이 좀 풀렸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관제탑이 보여 마음도 좀 놓였다. 우리 비행시간은 1시 25분, 다시 출발한 시간은 11시 25분이었다. 딱 맞게 도착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운전사는 우리에게 검문에 붙잡힌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며, 경찰이 이상한 걸로 트집 잡은 거라면서 우리가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가 우리끼리만 남아 여권 검사를 받게 된 것도 운전사 (또는 경찰) 때문이었지만, 어찌 되었는 결과적으로 늦지는 않게 되었으니 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경이 반복해서 사과해준 것도 고마워서 그 사건을 통째로 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전사는 갑자기 우리에게 비행기 시간이 언제인지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당연히 그가 자신 때문에 우리가 늦을까 봐 걱정해주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1시 25분이고, 지금 딱 2시간 남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갑자기 표지판에서 가리키는 공항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틀더니, 주유소로 향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많이 지체한 건 아니었지만 황당했다. 만약 우리 비행시간이 더 급했으면 우리를 내려주고 갔을 거라는 건데, 그걸 생각해보면 주유가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공항에 손님을 데려다주러 나오는 사람이 기름이 부족한 채로 차를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황당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그냥 재미난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사건.
공항 카운터 직원도 친절했고, 나와 내 친구는 그래도 공항에 무사 도착하고 체크인도 잘 했으니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액땜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황당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다시금 흥분하기도 했지만 이제 다 끝났으니 됐다면서 웃어 넘기기로 했다.
보안검색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기념품을 구경하다, 라운지가 있기에 와이파이라도 쓰려고 라운지에 들어갔다. 공항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고, 보안이 걸린 와이파이 몇 개가 뜰뿐이었다. 당연히 라운지 와이파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어가 앉아 자리 잡은 뒤 보니까 이곳도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음료수 한잔 마시고 보딩 타임인 12시 45분이 되어 다시 나왔다. 그런데 게이트 4개 중 1시가 넘도록 우리 비행기가 화면에 뜨는 곳은 없었다. 중앙 화면을 보니 항공편들의 게이트 넘버나 딜레이 정보는 없고, 쓸데없이 체크인 카운터만 떠 있었다. 이미 체크인을 다 하고 들어온 마당에, 게이트 앞에 왜 그런 정보만 떠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표에는 게이트 1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곳은 에티오피아로 가는 항공편 보딩 준비 중이었다. 그래서 주위에 보이는 모든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는데 2명은 모른다고 하고 1명은 게이트 1이라고 하고 1명은 게이트 4라고 했다. 공항은 작지만 사람이 꽉 차 북적거렸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전부 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불안해했다. 결국 우리 비행기는 에티오피아 항공편 보딩이 끝난 후, 1시 20분이 넘어서야 보딩을 시작했다.
나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내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친구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비행기 보딩이 늦어져 도착도 늦게 해서 환승시간이 짧았던 친구는 내리자마자 허둥지둥 달려야 했다. 덕분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다. 물론 못다 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나는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나와 환전을 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해 내가 묵을 숙소에 전화해 픽업을 요청했다. 이곳은 사전 요청을 해두어도 도착 후 반드시 전화를 해야지만 픽업을 온다고 했다. 이 숙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은 나미비아에 대한 글이므로 여기서 마무리한다.
황당함의 연속이었던 나미비아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