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6, 97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
2017.05.08, 09
나미비아 여행이 끝나고, 나는 트럭킹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에 갔다. 트럭킹 투어란 트럭을 타고 다닌다 해서 나온 말로, 원래는 대륙 내 국가들을 넘나들며 여행한다는 의미로 오버랜드(overland) 투어라고 부른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렇게 트럭킹 투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국적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버스처럼 개조된 대형 트럭을 타고 캠핑을 하는 여행 방식이다.
나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해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끝이 나는 32일간의 투어를 신청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묵은 호스텔은 트럭킹 투어 전에 묵는 곳인데, 출발 전날 1박은 무료로 포함이 되어있지만 그전은 비용 지불을 따로 해야 한다. 친구와 나미비아 여행을 마치고 트럭킹에 참여하고자 하니 딱 맞는 출발일이 없어서 이곳에서 3박을 했다. 트럭킹을 예약할 때 함께 정해주는 숙소였는지라 따로 알아보지는 않았고, 어차피 요하네스버그가 워낙 위험하다고 하니 그냥 숙소에서 쉴 요량이었다.
물론, 숙소 시설이 캠핑시설보다 안 좋을 줄은 몰랐다. 그나마 첫 밤은 손님이 없어 개인실로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는데, 깨끗하진 않았지만 개인 화장실을 쓸 수 있어 좋았다. 다음날에는 7인실 도미토리를 썼는데, 그날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썼다. 손님이 없는 것은 트러킹 투어 출발 전 숙소용으로만 사용돼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시설 면으로 보나 위치 면으로 보나 누가 일부러 찾아올 것 같은 숙소는 아니었다. 7개의 침대 중 위에 거미가 대여섯 마리 매달려있지 않고, 2층 침대에 금이 가 무너질 것 같지 않고, 방 안 유일한 콘센트가 가까이 있는(7인실에 콘센트는 하나) 침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숙소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친구와 헤어진 뒤 급격하게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남미 여행을 마치고 엄마와 헤어져 뉴욕에 갔을 때에는 가자마자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한인 민박 도미토리에서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뉴욕이 워낙 복잡하고 할 거리가 많은 도시여서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계속 혼자 지내야 했고, 또 밖에 나갈 만한 도시도 아니어서 정말 외로웠다. 심지어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숙소 주인이 절대 혼자 나가지 말라고 하면서 나를 태워다 줄 정도였다. 내가 원했다면 요하네스버그 일일 투어라도 신청할 수 있었겠지만, 5주 간의 캠핑 전에 일단 푹 쉬고 싶었다.
며칠 동안 나는 아이처럼 불안해했다. 갑자기 한국인이 엄청나게 그리워지고, 한국 여행사를 알아볼걸 후회하게 되고, 왜 캠핑을 5주씩이나 참여하기로 결정했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데이터 로밍도 했다. 리셉션 근처에서 희미하게 와이파이가 잡힐 때도 있었지만, 내게 필요한 건 리셉션을 근처를 배회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편히 누워 재미있는 것도 찾아보고, 불안함을 잊게 만들어줄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개인실에서 한 밤, 7인실에서 한 밤을 보낸 뒤, 드디어 3일째 오후, 캐나다인 두 명이 도미토리에 들어왔다. 둘은 친구 사이인데, 빅토리아 폭포까지 간다고 했다. 내가 선택한 투어는 빅토리아 폭포를 기준으로 두 개의 투어로 나뉘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 캠프 인원 전원이 모여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총 17명 중 나처럼 나이로비까지 가는 사람은 8명이었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새로 만나게 될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했다.
참 신기하게도, 오전까지 우울했던 나는 토론토에서 온 에리카와 나탈리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둘이 오랜 친구라 농담도 많이 하고 대화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나탈리의 친화력이 대단해서 순식간에 편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까지 모두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맥주 한잔씩 하니 긴장이 많이 풀렸다. 막상 시작하면 이렇게 괜찮을 걸, 며칠 밤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웃음이 났다.
요하네스버그의 좋지 않은 치안, 어둡고 사람도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숙소, 추워지는 아프리카의 겨울. 이제 막 친구와 헤어져 새로이 캠핑 투어를 시작하는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다가오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요하네스버그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은, 사람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