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2, 243 - 뉴질랜드 퀸스타운(Queenstown)
오클랜드(Auckland)에는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렸다. 북섬의 오클랜드를 떠나 남섬의 퀸스타운(Queenstown)에 가는 날이었다. 비행기로 약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퀸즈타운에 착륙하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창밖에 보이는 풍경들만으로 이곳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설산, 호수, 게다가 맑은 날씨까지. 오클랜드도 바다가 가깝고 초록색이 가득했던 곳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뉴질랜드의 청정 자연을 한껏 보게 될 차례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퀸즈타운 역시 초봄 분위기가 가득했다. 오클랜드보다는 조금 더 남극에 가까워 더 서늘했지만, 숙소 앞 벚꽃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봄처럼 한껏 꾸민 차도, 시내로 걸어가는 길에 보게 된 졸졸 시냇물도, 모든 것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퀸즈타운은 아주 작은 도시였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이 많았지만 아기자기하고 깔끔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것만 같았다.
가게들이 있는 골목을 벗어나면 와카티푸(Wakatipu) 호수의 절경을 볼 수 있다. 이토록 평화로운 풍경을 앞에 두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언젠가 나이가 들면 한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이곳에 와서 노년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부모님께서도 이곳에 푹 빠지셨는지 지금도 종종 퀸즈타운을 떠올리신다.
스카이라인 곤돌라(Skyline Gondola)를 타고 올라가면 퀸즈타운 시내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마침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도 있어서 스위스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와카티푸 호수는 무려 80km 정도의 길이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호수이고, 그 면적은 약 291㎢로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수심은 300~400m에 이른다.
그러니 퀸즈타운 앞의 와카티푸 호수는 극히 일부분이다. 주위를 둘러싼 산들 너머로 호수가 이어지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날씨가 맑으니 풍경이 더 예뻤다. 옆 산책로를 따라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도 천천히 걸어보았다.
나의 세계여행 중 마지막 여행이기도 하지만, 또한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는 여행이기도 해서 부모님께 이런 포즈도 주문했다.
피로가 남아있어 오후에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뒤 이 동네 최고 인기 맛집인 퍼그 버거(Ferg Burger)라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늦은 시간까지도 줄이 굉장히 길었는데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테이블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 뿐.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 있어 정말 두툼하고 맛있었다. 후식으로는 마트에서 산 키위를 몇 개 먹었는데, 초록색 키위가 이렇게 단 건 처음이었다. 역시 뉴질랜드 키위였다.
다음날 오전에는 숙소 근처 호숫가를 산책해보기로 했다. 전날 구경했던 시내와 반대방향으로 걸어보았다.
집에서 문 밖을 나서면 바로 이런 풍경이 보이다니, 매일매일이 휴가 같지 않을까. 매일 보면 이 풍경도 지겨울 수 있으려나.
하지만 나 역시 5년을 인천대교가 보이는 방에서 살았지만 지겹지 않았다. 석양으로 물든 하늘 배경은 매일 색이 달랐고, 맑은 낮의 풍경은 시원했으며 오전 해무가 낄 때면 으스스하였다. 이곳도 아마 그럴 것이다.
호수의 풍경은 시내 쪽이 더 예쁜 것 같기는 했지만, 이곳은 관광객이 없어서 좋았다. '만약 이곳에서 노년을 보낸다면'을 체험해보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고무 타이어 그네에서 놀기도 하고, 조깅 나온 현지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그리고 오늘도 부모님께 포즈 주문을 했다. 엄마는 머리가 이상하게 휘날렸다며 싫어하셨지만 나는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전날처럼 이 동네만 계속 돌아다녀도 충분히 즐거웠겠지만, 호기심에 근교에 가보기로 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 근처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했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는 깁슨 밸리(Gibbston Valley) 와이너리가 있었다. 오클랜드에서 친구가 나와 함께 마신, 무려 5년간 숙성시켰던 와인이 바로 이곳 와인이었다.
새 잎이 돋아나려고 하는 포도밭을 구경한 뒤 와인 테이스팅을 했다. 이날 테이스팅 한 4종류의 와인은 하나를 제외하고는 마음에 쏙 드는 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친구 집에서 마신 와인은 굉장히 맛있었는데.
퀸즈타운으로 돌아가는 다음 셔틀이 1시간 반 뒤에나 있어서, 우리는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지나쳤던 번지점프를 하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지만 햇빛은 따뜻했다. 밑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강물이 굉장히 예뻤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상업적으로 운영한 곳이라고 한다.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한 곳은 따로 있겠지만, 돈을 받고 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는 소리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촬영지라고도 하는데 영화를 보지 않아서 정확한 건 모르겠다. 뛰어내리는 사람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았다. 겁이 많은 나는 절대 못 할 것 같은데, 대단하다.
시내에 다시 도착하니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이 많아서 한 군데 골라갔다. 우리는 립아이, 필레, 그리고 사슴고기를 주문했는데 특히 립아이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사슴 고기는 질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고 특유의 냄새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에는 없지만 함께 주문했던 치아바타 빵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해서 환상적이었다.
식사 뒤에는 호숫가에 있는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원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작은 동네이다 보니 밤의 불빛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밤의 퀸즈타운을 보고 싶었던 건,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다처럼 파도치는 호숫가의 소리를 듣다가, 이번에는 달콤한 골드 키위를 먹고는, 다음 일정을 고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사소한 메모 #
* 뉴질랜드 사람들은 스스로를 키위라고 부른다. 대부분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부르는 별칭은 모욕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신기했다. 하긴 동글동글한 키위새도, 새콤달콤한 키위도, 미워할 구석이 없으니까.
* 설산과 서울의 반만 한 바다 같은 호수, 내가 정의하는 살고 싶은 동네는 딱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