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4~245-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오후 4시 반쯤 항에 도착해 배에 올랐다. 2인실 또는 도미토리 형식의 4인실을 쓸 수 있는데, 나는 부모님을 위한 2인실과 내가 쓸 4인실 침대 하나를 예약했다. 하지만 체크인할 때 방이 남는다며 2인실로 업그레이드해줘서 혼자서 한 방을 쓸 수 있었다. 작지만 아담했다.
아주 오래전 베트남에 갔을 때 하롱베이에서 배 위에서 하룻밤을 잤었다. 당시 배는 좀 작은 편이었는데, 밤에 폭풍이 쳐서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 같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다 같이 여기서 죽는 것 아니냐고 친구들과 장난쳤는데 다음날 아침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굉장히 맑고 평온했다.
이날도 날이 많이 흐렸다. 낮에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은 대체로 맑았는데, 밀포드 근처에 오면서부터 구름이 많아지더니 배를 타고난 뒤에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중간중간 절벽에서 흘려내리는 폭포들이 조금씩 밝혀주었다.
아주 먼 곳은 맑은 하늘이 살짝 보이는데, 우리가 있는 곳의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빗방울도 내렸다.
배는 가끔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서 폭우와 같은 폭포수에 흠뻑 젖기도 했다. 나는 우비를 쓰고 폭포에 최대한 가까이 있어보았다.
그렇게 비와 폭포를 번갈아 맞던 중, 어느 순간 비가 그쳤다. 마침 우리가 오늘 하룻밤을 보낼 곳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전에 두 가지 액티비티 중 하나를 선택해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나는 8~10명 정원의 작은 보트를 타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약을 타는 것이었다.
나와 엄마는 보트를 타기로 했고, 아빠는 난생처음으로 카약에 도전해보시기로 했다. 나도 카약을 타볼까 했지만 피곤해서 말았다.
보트를 타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펭귄이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수영하는 모습이 마치 오리 같기도 했다.
저 멀리에는 뒤뚱뒤뚱 육지로 올라가는 펭귄도 있었다. 펭귄 종류는 멜버른 필립 아일랜드에서 보았던 페어리 펭귄과 비슷해 보였다. 그때 수백 마리를 봤는데도 또 보니 귀여웠다.
저 멀리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빠가 처음으로 카약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쉬운 찰나, 갑자기 우리 보트가 빠르게 움직이더니 카약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가니까 아빠 사진 찍어드려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와 둘이 '아빠 물에 빠진 거 아니야?' 라며 킥킥 웃었는데,
진짜로 빠져 있었다. 우리 보트는 아빠를 구하려고(?) 빨리 달려간 것이었다. 15명 정도 되는 인원 중 혼자만 빠졌다고, 빙하 물 마셔서 좋겠다고 엄청 놀렸지만 사실은 아빠 연세에 이렇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신 것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이곳 물은 빙하가 녹아들어 온 물도 있지만 바닷물도 들어와 있어서 아빠 옷과 신발을 모두 헹구고 말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많이 도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저녁 식사는 뷔페식으로 차려주었는데, 식사에서 후식까지 종류가 꽤 많았다. 셰프는 '오늘 수영 한 사람이 있다던데,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나와서 받으라'고 농담을 던져 아빠가 가장 먼저 접시를 들었다. 배 위에서 하는 식사치고는 굉장히 훌륭했다. 맥주까지 마시니까 노곤해졌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바깥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한번 기웃거려 보았다. 날씨가 너무 흐려서 달과 별은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저 멀리까지 겹겹이 있는 산맥의 모습이 신비롭고 멋있었다.
바람만 적당히 쐬고 들어가려는 찰나, 무언가 물속에 있는 것이 보였다. 펭귄인가 했더니 물개였다. 너무 빨리 움직여서 사진은 이게 전부다. 낮에는 햇빛 아래에서 잠만 자더니, 밤에는 물고기 사냥을 하나보다.
아침은 더욱 신비로웠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서 창가에 앉아있으니 밖이 서서히 환해졌다. 안갯속에 비치는 산들의 모습이 운치 있었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개서 맑은 날씨의 밀포드를 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흐렸다. 그래도 곳곳에 있는 폭포들이 어둠을 조금씩 밝혀주는 듯했다.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크고 작은 폭포들은 이곳을 더욱 웅장하면서도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다. 감독의 국적이 달랐어도 영화 <반지의 제왕>을 뉴질랜드에서 찍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피오르드를 따라 파도가 치는 타스만 해(Tasman Sea)까지 살짝 나왔다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가는 길에는 돌 뒤에서 물개가 누워서 자는 것도 보았다.
비도 오고 안개도 많이 꼈지만 멋진 피오르드와 폭포들이 어우러진 웅장한 자연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평온해진 1박 2일이었다. 물론 아빠가 물에 빠진 것도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다.
배에서 내려 다시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길, 테아나우(Te Anau) 근처에서는 멋진 무지개도 보았다. 남섬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예쁜 마침표 같았다.
# 사소한 메모 #
* 언젠가는 이곳에서 트레킹을 해야지. 그때는 날이 맑았으면 좋겠다.
* 아빠와 다시 한번 카약을 타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