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6 - 뉴질랜드 와이토모(Waitomo) 동굴, 테푸이아
뉴질랜드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던 곳은 두 군데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글로우웜 동굴과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비튼(호빗 마을) 촬영지.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온 다음날, 그 두 곳을 모두 볼 수 있는 1박 2일 여정을 떠났다.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 가는 길은 푸른 초원들의 연속이었다. 사람보다 양이 더 많다는 뉴질랜드 벌판에는 양들과 염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날이 흐렸지만 그런 재미로 특별히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 도착지는 와이토모 글로우웜 동굴(Waitomo Glowworm caves)이었다. 반딧불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데, 글로우웜은 반딧불이 아니라 반딧불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발광 애벌레를 의미한다. 이곳에 서식하는 뉴질랜드 글로우웜은 푸른빛을 띤다.
평균 9개월 정도를 애벌레로 살다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데, 성충은 입이 없어 먹지 못하고 알만 낳고는 며칠 뒤에 죽는다고 한다. 성충도 빛을 내기는 하지만 애벌레들이 훨씬 선명하고 밝은 빛을 낸다. 애벌레들은 기다란 실을 늘어뜨려 거미가 먹이를 얻듯이 파리 등을 잡고, 스파게티를 먹듯 후루룩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들의 일생은 끔찍하지만 그들이 내는 빛은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입구에서 숲길을 지나 꽤 큰 동굴 속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완전히 깜깜한 곳이 나온다. 최종 목적지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배를 타는 곳에는 정말 아무 빛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다. 그렇지만 천천히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새 천장에 붙어있는 글로우웜들의 화려한 지도를 볼 수 있다. 푸른빛들이 촘촘하게 동굴을 뒤덮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모두 말을 잃었다. 살면서 보았던 광경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멋졌다.
이곳 역시 사진은 허용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려버리면 글로우웜은 불빛을 감춰버린다고 한다. 그러면 한두 시간 후에나 다시 불빛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차피 엽서가 더 멋있으니까 엽서를 여러 장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글로우웜을 직접 찍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동굴 안에서 찍은 건 아니고, 저녁에 로토루아(Rotorua)에 도착해 마오리(Maori) 부족 마을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나갔는데, 풀잎들에 여러 마리가 붙어있었다. 물론 와이토모 동굴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기념으로 한 번 찍어보았다. 삼각대가 없어서 많이 흔들렸지만.
글로우웜 동굴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다음은 특별히 기대한 건 아니었던 아그로돔(Agrodome) 농장에 갔다.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들른 것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재밌었다. 양털 깎는 걸 처음 봤는데 처음에는 양이 기겁하고 피하더니 주인이 특정 자세를 취해주니까 금방 얌전해졌다. 그래서 끝까지 평온한 표정으로 털이 다 깎일 때까지 얌전히 있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양몰이 개도 처음 봤는데 이때는 정말 양들이 너무 불쌍했다. 개가 딱히 짖는 것도 아니었는데 살금살금 걸어오면 구석으로 겁먹고 도망 다녔다. 사진 속에는 양들이 개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도 못 마주쳐서 더 불쌍해 보였다.
꽤 큰 트레일러를 타고 농장을 구경했다. 중간에 양들에게 먹이도 줄 수 있었는데 손에 먹이를 조금 올려두고 내밀면 양들의 혓바닥이라든가 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뜨끈한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재밌어서 먹이가 바닥날 때까지 놀았다.
160 헥타르에 이른다는 이 농장에는 양을 제외하고도 굉장히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다. 울타리는 모두 쳐져 있었지만 거의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슴과 소,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타조도 있었고 어미젖을 먹는 아기 염소도 귀여웠다.
다음은 테 푸이아(Te Puia)에 갔다. 온천과 간헐천이 유명한 곳인데 그전에 마오리족의 민속 공연부터 보았다. 우리에게는 '연가'로 잘 알려져 있는 포카레카레아나 등등의 다양한 폴리네시안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다. 노래들이 다 흥겨워서 재미있었지만, 나중에 저녁에 본 공연이 더 좋았다.
이곳에서 총 1시간 정도를 머물렀는데 공연만 거의 40분 동안 이어져서 실망스러웠다. 단체로 움직여야 하니까 이탈도 하지 못했다. 간헐천은 50~60분에 한 번씩 올라온다는데 20여 분 동안 서둘러 구경하니 당연히 못 봤다.
온천을 형성하는 바위들은 참으로 기괴했다. 온천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수증기는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더 오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간단히 보고 가서 아쉬웠다. 투어의 편리함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패키지인듯 아닌듯 했던 단체 투어는 이날 일정은 끝이 났고 로토루아에 도착한 이후 저녁은 개인 일정이어서 남은 시간은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약 3주 전 호주에 있을 때 뉴질랜드 현지 여행사를 통해 1박 2일 여정을 통째로 예약했다. 그런데 출발 직전 밀포드에 가는 길에 숙소가 바뀌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아 그것으로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심지어 숙소가 바뀐 것도 따로 이야기해준 것이 아니라 '수정된 일정'이라는 제목으로 일정을 보내주었고, 바뀐 게 없어 의아해하다 숙소만 바뀐 것을 내가 스스로 알아챈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바뀐 숙소에 체크인을 하니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호텔 로비에서 여행사에 전화해 리셉션을 바꿔주어 바로 해결했지만, 이 여행사 직원의 무책임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사소한 메모 #
* 별이 빼곡하게 박힌 밤하늘보다 더 신비롭고 황홀한 광경을 발견했다.
* 하루하루 놀라움의 연속, 버킷리스트를 또 하나 지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