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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Day 247 - 뉴질랜드 마타마타(Matamata)

by 바다의별

호비튼(Hobbiton) 구경은 아주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투어가 끝나자마자 엄청난 당황스러움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나는 1박 2일의 오클랜드-로토루아 일정을 뉴질랜드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다. 부모님과 함께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곳은 예약 대행만 해주는 곳이었고, 실제 투어는 다른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연히 1박 2일 동안 한 명의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첫날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 가는 것만 투어 형태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별도로 이루어졌다.


사전에 아무런 언급이 없어 당일에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단지 굉장히 복잡했을 뿐. 같은 버스를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일정이 아니었고, 식사도 어떤 사람은 포함 어떤 사람은 불포함이었다. 중간중간 어떤 사람들은 버스를 바꿔 타고 어떤 사람들은 더 일찍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매 순간 가이드의 지시에 집중해야 했다. 여행사들 입장에서는 여러 투어를 한대의 버스로 진행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겠지만, 가이드/버스기사와 승객들에게는 꽤나 혼란스러운 방식이었다. 그래도 첫날은 가이드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줘서 괜찮았다.


그래서 둘째 날도 이처럼 깔끔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호비튼 투어에서부터 오클랜드에 돌아가기까지 첫날의 투어처럼 누군가의 안내로, 같은 일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여행사 직원이 내게 보내준 일정표가 첫날의 내용만큼이나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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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호비튼 투어 시작, 종료 마타마타(Matamata)에서 45분 정도 대기한 뒤 오클랜드행 버스 탑승' 이 전부였다.


투어 시작 전에는 1박 2일간의 단체 관광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이나 이동 방식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고, 투어 시작 후에는 당연히 첫날처럼 대표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고 버스를 옮겨 타는 방식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것이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 성의 없는 한 문장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1. 호비튼 투어는 실제로 1시가 아니라 1시 20분 출발이었다.

로토루아의 호비튼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출발 시간은 호비튼 홈페이지에 적혀있을 정도로 매일 규칙적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이걸 여행사 직원이 예약을 했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아니면 알면서도 시간을 잘못 알려준 것)에서부터 조금 불안해졌다. 그래도 마타마타에서 오클랜드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어차피 투어 종료 예정 시간으로부터 4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2. 투어 종료 예정 시간이 안 적혀 있다.

하지만 호비튼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호비튼 투어 가이드)가 모이는 지점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 바람에 승객들이 다시 모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승객들이 모두 탑승해야 입구로 되돌아갈 수 있어 15분 정도 기다렸다. 입구인 '샤이어 레스트'에 돌아가니 오후 5시 20분이었다. 투어가 1시간 정도 진행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계획상 적혀있는 것보다 총 35분(출발이 20분 늦은 것 포함) 정도 늦어졌으니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3. 마타마타가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안 적혀 있다.

호비튼의 주소지는 마타마타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샤이어 레스트'라고 불리는 호비튼 투어의 출발지, 호비튼의 입구에서 오클랜드행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여러 도시에서 온 호비튼 투어 버스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표에서 말하는 마타마타는 마타마타 시내이다. 그렇다면 마타마타 시내로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걸어가야 하는지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었어야 했다.


4. 마타마타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투어가 끝나고 투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호비튼 직원에게 마타마타 시내에 가는 법을 물어보았다. 직원은 마타마타로 가는 버스가 이미 조금 전에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30분 후에 온다고 했다. 그때가 5시 20분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여행사에 전화해보니 내 담당자는 휴가 중이었고 다른 직원이 대신 받았다. 5시 45분에 마타마타 시내에서 오클랜드로 향하는 버스가 있고, 그 버스가 이날의 마지막 버스라고 했다. 버스를 놓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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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황당함을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내 일정표에는 정확한 버스 탑승 시간이 없었고, 호비튼에서 마타마타로 알아서 이동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으며, 호비튼 투어는 직원이 애초에 일러준 시간보다 20분 늦게 시작했고 그마저도 가이드의 실수로 투어가 늦게 종료되었다고. 우리는 내일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직원은 택시를 불러줄 수 있다며, 비용은 250달러 정도라고 했다. 나는 과실이 여행사 측에 있는데 그 비용을 지불해줄 거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내게 '여태까지 그 버스를 놓친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여행사에서도 내 말만 듣고 믿을 수는 없었을 테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도 우리 탓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전화통화는 마타마타행 호비튼 버스에 올라서도 계속되었다. 예약해준 직원이 아닌 다른 직원이니 차분하게 대화하겠다던 내 다짐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쉬지 않고 전화로 쏘아댔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게도 미니버스에 같이 올라탄 다른 승객들이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결국 여행사에서는 택시를 불러주기로 했고, 그 비용은 추후 잘잘못을 가려 환불을 해주든지 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거의 끝날 무렵 우리는 마타마타 시내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버스 기사는 내내 통화 내용을 들으며 마음이 쓰였는지, 우리와 함께 내렸다. 와 있을 거라던 택시가 와 있지 않아 다시 여행사로 전화를 걸려던 차에, 시력 좋으신 엄마가 오클랜드행 시외버스가 한 대 오는 것을 발견했다. 저가 버스였는데 그 시간대에 지나는 버스가 원래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예정보다 늦어진 모양이었다. 다짜고짜 버스를 세워 자리가 있느냐 물어보니 자리가 있으며 3명에 70달러라고 했다. 다급히 버스 비용을 지불하는 동안 호비튼 버스 기사는 우리 사정을 오클랜드행 버스 기사에게 대신 전해주었다.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경황이 없어서 감사의 인사도 너무 간단하게 전한 것 같아서 아직까지 아쉽다. 어쨌든 그 덕에 택시는 취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원래 오클랜드 도착 예정시간에 거의 근접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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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버스 비용 70달러는 귀국 후 모두 돌려받았다. 나는 장문의 메일을 통해 자초지종을 다시금 설명했다. 다른 여행사에서 여러 투어를 묶어서 동시에 진행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점, 어디까지를 가이드가 진행해주고 어느 부분을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점, 호비튼 투어와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버스는 별개의 아이템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점 등등. 여행사에서는 내 메일을 받은 뒤 호비튼 측과 통화하여 내용을 대조해보고는 우리에게 사과했다.


첫날처럼 가이드 한 사람이 모든 걸 조율하며 운영하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이날처럼 모든 걸 우리가 해야 하는 경우에는 모든 것에 대한 정확한 시간과 방법을 알려주었어야 한다. 그걸 해주지 않으면 자유여행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물론 버스 시간을 미리 물어보지 않은 게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첫날 예상외로 여러 팀이 함께 투어를 진행했고, 그 투어들의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일일이 아는 것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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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이날 큰 교훈을 얻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꼼꼼하게 다시 한번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 여행 마지막 날을 앞두고 참으로 스펙터클한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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