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7, 248 - 뉴질랜드 오클랜드(Auckland)
호비튼에서 엄청난 설렘에서부터 극도의 분노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넘나들었지만, 어쨌든 오클랜드행 버스에 겨우 탑승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양들이 뛰노는 벌판과 작은 마을들을 두 시간 정도 지나치자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다행히 당초 오클랜드 도착 예상 시간보다 늦지 않게 도착해서 덜 억울했다.
부모님은 아직 오클랜드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저녁 식사 전에 항구 쪽을 조금 산책하기로 했다. 나도 며칠 오클랜드에 있었지만 오클랜드 중심가의 밤은 처음이었다.
이날은 오클랜드에서의 마지막 밤,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내게는 이 기나긴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여전히 실감 나지는 않았지만, 달력은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피곤했음에도 쉽게 숙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 친구와 함께 지나갔던 골목은 밤이 되니 화려하게 불빛이 켜져 예쁘게 빛났다. 마침 배도 고파서 이곳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 한 잔씩 했다. 별 검색 없이 들어간 레스토랑은 꽤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술에 살짝 따뜻해진 내 볼을 스치는 바람이 가장 근사했다. 긴 일정이 끝에 다다른 순간에도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반가웠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대로 잠들기는 아쉬워 숙소 근처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밤바람 속에서 내가 보낸 지난 시간들을 부모님과 함께 나누었다. 무거운 배낭과 함께일 때는 곧 집에 간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이렇게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려니 아쉬움이 깊어졌다.
다음날은 타카푸나 비치(Takapuna Beach)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 갔던 곳들 중, 이곳은 꼭 부모님과 다시 오고 싶었다. 미션 베이, 마운트 이든, 폰손비 모두 좋았지만 랑기토토가 보이는 해변과 이곳의 카페, 그리고 오고 가는 길에 오클랜드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이 마지막 날 들르기 가장 좋은 장소일 것 같았다.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해변을 걷는 건 좋았다. 흐린 날의 랑기토토는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긴 여행의 시작과 끝을 가족과 함께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남미 여행은 좋은 예행연습이었고, 부모님과의 뉴질랜드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마무리였다.
시내로 돌아와서는 방대한 양의 기념품을 샀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하며 마지막 여유를 즐겼다. 이제 공항에 갈 시간이었다.
공항에 가면서도, 공항에 도착해 인천행 티켓을 받으면서도, 집에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천을 경유해 또다시 다른 곳으로 향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행은 끝나고 있었다. 달고 쓰던 이 시간, 내 인생의 한 조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 사소한 메모 #
* 꿈을 꾸다 일어나는 기분.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던 기분. 하지만 기분 좋은 점심 약속이 있어 일어나는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