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맴도는 구절 #5
가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 사가 실제로 있는 곳이기를 바라게 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를 괴롭게 만드는 기억들을 삭제하고 싶을 때.
그 정도로 잊고 싶은 기억이 있을 때는 '그런 기억들이 있어 행복한 기억들이 더 빛나는 거야'라는 위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다. 때로는 위로나 충고가 아닌 공감 한 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되어주니까.
그대가 내 속에 '피어난다'는 말이 얼마나 예쁜지.
하지만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픈지.
한 해가 저물 때 아픈 기억들도 산 넘어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최영미, '선운사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