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다

가치가 변화하듯, 이야기도 변화한다

by 바다의별

무엇이 백설공주를 백설공주로 만드는 것일까?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같이 빨간 입술, 그리고 검은 머리칼을 지닌 주인공?

아니면 계모에게 쫓겨난 뒤 일곱 난쟁이들을 만나고 행복한 결말을 찾아가는 줄거리?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실사화한다는 소식과 함께, 캐스팅에 대한 갑론을박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동화 원작에서 '피부가 눈처럼 새하얗다'라고 묘사된 백설공주 역에 라틴계 배우가 낙점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되었을 때만큼의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동화는 역사가 아니다.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는 1937년작이며 <인어공주>는 1989년작이다. 두 작품의 원작 동화는 각각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에도 캐릭터 설정과 줄거리, 결말에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 시대상, 사회적 풍습 등이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동화 속 백설공주가 왕비로부터 쫓겨날 때의 나이는 고작 7살쯤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14살 정도로 설정했다고 한다. 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잠든 뒤 왕자가 1년 뒤에 깨워서 결혼한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14살도 지금 기준으로는 매우 어리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가치도 변화한다. 실제로 수동적이기만 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들이 최근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훨씬 더 도전적이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알라딘>의 경우에도, 자스민 공주의 역할이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보다 더 확대되었다. 자스민은 디즈니 공주들 중에서도 꽤나 주체적인 편이었지만, 1992년작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2019년의 자스민은 마음껏 분노하고 절규하며, 본인이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


디즈니는 작품으로서의 <백설공주>를 선택한 것이지, 백설공주라는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백설공주 역을 반드시 피부가 뽀얀 사람이 연기해야 한다는 법도, 반드시 외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법도, 그 캐릭터가 반드시 왕자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법도 없다. 리메이크란 복제가 아니다. 영화든 음악이든, 원작은 그 어떤 방식으로든 해체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가치를 반영해 재해석하지 않는다면 리메이크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원작의 요소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도를 가지고 그 작품을 선택한 쪽의 몫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라틴계 배우를 백설공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죄다 인종차별주의자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해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나도 한 때는 비슷한 걱정을 했으니까.


몇 년 전 초연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연극에서, 헤르미온느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원작 소설에서도 헤르미온느가 백인으로 묘사된 바 있다는 것과, 이미 8편의 영화에서 백인 배우가 해당 역을 연기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영화도 소설 속에서 표현된 인물들의 외모적 특징(머리 스타일, 치아, 눈 색깔 등)을 전부 지키지는 않았다는 사실. 나는 막상 연극을 실제로 보면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헤르미온느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건 외모도 물론 있지만, 그의 성격과 말투,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성 또한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에 새롭게 제작되는 <백설공주>가 새로운 주인공과 더불어,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가치를 지니기를 기대한다. 이번 영화 속 갈등과 결말은, 동화와 애니메이션 속의 그것들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계모가 백설공주를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질투해 쫓아내는 스토리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왕자가 백설공주를 처음 만나는 게 이미 그녀가 '죽은' 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건 1800년대, 1930년대에는 공감받을 수 있던 갈등 원인과 해결방법, 해피엔딩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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