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풍경이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 중 하나는, 결단력이 좋다는 점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퇴사 결정도 3일 만에 했고, 2년을 투자해야 하는 교육 과정도 2일 만에 수강신청을 마쳤다. 머리 자르기 같은 건 오전에 결심하면 오후에 미용실에 간다. 그렇게나 결정을 빨리 내리는 편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 첫 책의 제목을 짓기 전까지는.
원고를 몇 차례 탈고를 하고, 사진도 몇 차례 골랐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동안, 책의 제목은 첫 글자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차의 제목들은 대부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척척 나왔는데 (다 좋은 제목은 아니겠지만), 이 책 속 내용을 모두 아우르는 제목을 짓는 건 너무나도 고민스러웠다. 처음에 좋은 생각 같았던 제목도 며칠 지나고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하려나. 한 번 짓고 나면 다시 고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기는 아직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짓는 것일 뿐. 그에 비해 책은 제목과 함께 '이미 다 된 것'을 전부 한 번에 공개하는 것이므로, 아이 이름을 짓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고충이 있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
'그 이야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제목은 뭐가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아서 시선을 바꾸어보았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더라?'
여행하면서 나는 늘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이 마을은 왜 이런 색으로 칠해진 것인지, 이 폭포는 누가 처음 발견한 것인지, 이 성당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 이 산책로는 누가 이렇게 예쁘게 가꿔놓은 것인지.
그런데 질문들이 하나하나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다다르는 곳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떨 때 이곳을 찾을까?'
'저 사람은 왜 이곳에 왔고,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제목이라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질문을 던졌고, 질문이 던져진 후에야 나는 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풍경이고 싶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