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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r 12. 2024

서로에게 친절해야 할 의무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긴 일

‘What we owe to each other’


위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우리가 서로에게 진 의무’, ‘우리가 서로에게 진 빚’ 정도가 된다. 미국의 철학자 T.M. 스캔런의 저서 제목으로, 내가 좋아하는 미국 시트콤 <굿플레이스>에 종종 언급된 말이기도 하다. <굿플레이스>는 사후세계에 대한 시트콤인데, 올바른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우리가 타인에게 늘 친절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그런 ‘의무’를 지게 다니? 물론 모르는 사람을 굳이 악의를 가지고 대할 이유도 전혀 없지만, '의무'라고 하니 어쩐지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도, 그리고 종영된 후에도, 저 개념은 내 머릿속에 콕 박혀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느 퇴근길,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는 작은 틈 사이에 서 있었다. 몇 차례 빈자리가 나는 듯했지만 내 근처에서는 나지 않았다. 모두가 피곤하고 지쳐있을 퇴근길에는 빈자리가 나도 금방 매진된다.


그런 풍경이 평소와 달라지게 된 건, 한 젊은 남자가 바닥에 쓰러지면서부터였다. 문 근처에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중심을 잃더니,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스르르 쓰러졌다. 주변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주위에 모여들어 그의 몸을 뒤집어주었다. 눈을 뜬 걸로 봐서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듯했지만, 입 주위에 살짝 거품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종의 경련을 일으킨 것 같았다.


쓰러진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여자는 곧장 119에 화를 걸었고, 쓰러진 남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일제히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 들었다. 남자는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한 아저씨가 그 남자를 억지로 자신의 자리에 앉혔다. 같은 의자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다시 앉지 않고 남자가 누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나, 남자가 강경하게 거부하자 주춤하며 다시 앉았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


“네, 지금은 정신을 조금 차리신 것 같아요. 네, 걸을 수 있다고 하세요. 다음 역은 OO역이에요. 네, 제가 같이 내리겠습니다.”


119와 통화를 하던 여자는 망설임 없이 같이 내리겠다고 했다. 통화 내용을 듣던 남자는 괜찮다고, 이제 정신을 조금 차렸으니 혼자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불편을 끼치기 싫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안 그러면 제가 걱정될 것 같아서요. 저는 버스로 갈아타도 되니 같이 내릴게요.”


저녁 약속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계획에 없던 곳에서 내리려 하고, 어떻게든 자리를 차지해 앉으려던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일어났다. 누구도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다음에 지하철을 탈 때 그때 그 사람에게서 자리를 양보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교통에는 소위 말하는 이기적인 '빌런'(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이들)들도 많지만, 그날 저녁 아픈 사람을 위해 배려했던 사람들처럼 작은 친절을 베푸는 도 많다. 그들의 친절은 자신이 역으로 호의를 돌려받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인생은 삼삼오오 모여 함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목표나 과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잠깐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는 동안 같은 공간을 나눠 쓴다. 함께 탈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선택할 수 없는 채로, 누군가의 발을 실수로 밟기도 하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좌석을 양보받기도 하며 여정을 함께 한다. 언젠가 각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탈지도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우리는 서로 관계없는 타인이 아닌 동승자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난생처음 보는 타인에게 억지로 친절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동행자로서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매일 착하게 살려고 할까요? 현재든 사후세계에서든, 명확한 대가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는 그것이 타인과의 유대,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려는 우리의 선천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 드라마 <굿플레이스> 시즌2 13화 中

(“Why choose to be good, every day, if there is no guaranteed reward we can count on, now or in the afterlife? I argue that we choose to be good because of our bonds with other people and our innate desire to treat them with dignity. Simply put, we are not in this alone.”)


우리는 각자 따로 떨어진 여정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생이 얽혀 있는 틈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서로에게 친절해야 할 이유가 된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은 곧,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악의 없이 친절하게 대해야 할 의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불완전한 우리 존재 자체에서부터 피어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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