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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r 19. 2024

미쳤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캐나다 퀘벡시티에서 공항으로 가던 길

몇 년 전 혼자 세계여행을 하던 때의 일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4~50일이 지난 시점, 나는 캐나다 퀘벡시티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있었다. 캐나다 동부 여행을 마무리 짓고 미국 알래스카로 향하던 날,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계획했던 시간보다 30분쯤 일찍 준비해 우버를 불렀다. 우버는 금방 나를 태우러 왔고, 나는 눈 속에서 배낭을 서둘러 트렁크에 싣고는 차에 올라타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앵커리지요."

"아, 거기 사세요?"

"아뇨, 여행하러 가는 거예요."

"네? 미쳤어요? 죄송해요, 근데 여기도 이렇게 추운데 거길 여행한다고요?"


기사는 초면에 하기엔 실례인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곧장 사과했다. 물론 그가 무례한 투로 말한 것도 아니었고, 이미 그전에 날씨 이야기와 퀘벡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재밌었다. 나의 취향과 상반된 사람의 반응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추울 때 가야 제맛일 것 같아서 일부러 겨울을 택했다고 답했다. 그는 나를 공항에 내려줄 때까지, 꼭 스웨터 한 겹 더 챙겨 입고 따뜻한 부츠도 사 신으라는 둥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웃으면서 안 그래도 앵커리지에 가 부츠를 살 생각이었다고 답하며, 남은 겨울 잘 보내시라고 했다.


기사의 걱정을 뒤로한 채, 나는 앵커리지로 향한 첫걸음으로 공항 카운터로 향했다. 이번에는 항공사 직원이 티켓팅을 해주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최종 목적지는 앵커리지예요." (비행기를 3번 타야 하는 고된 스케줄이었다)

"와, 알래스카! 저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지금 가면 오로라도 볼 수 있고 너무 예쁘겠어요, 부러워요."


직원은 내 여권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으며 정말로 부럽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래스카에 가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열거했는데, 내가 하려고 계획했던 것들과 대다수 겹쳤다. 행복한 직원의 표정에, 이미 설레던 내 마음이 더욱더 두둥실 떠올랐다. 같은 일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이 이렇게나 상반될 수 있을까.



나는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항상 어렵다. 상대방의 취향을 내가 전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좋았던 여행지가 상대방에게도 좋을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나는 보다시피 추운 곳을 좋아하지만, 겨울을 질색하는 우버 기사와 같은 사람에게 알래스카를 추천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다. 누군가는 '그걸 왜 해?'라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나도 하고 싶어!'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우리 각자의 취향, 그리고 우리가 제각각 품고 있는 꿈들은 종종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따겠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쓸모가 없을 수도 있는 걸 위해 왜 사서 고생이냐고 했다. 내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괜찮겠냐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고 걱정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며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미쳤냐는 말도, 부럽다는 말도, 그저 일회성일 뿐 무게감은 없다. 그 말들은 어떤 책임도 져주지 않는다. 신중하게 구한 조언일지라도,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확실한 안내를 해줄 수 없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모두 한정적인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해 말뿐이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눈과 안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풍경도 보았고, 밤에는 최고의 오로라도 보았다. 최고의 오로라라고 하기엔 그전에 오로라를 본 일이 아이슬란드에서 뿐이었지만, 그래도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밤하늘 위를 춤췄던 오로라는 분명 먼 훗날에도 계속해서 돌아볼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밤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던 알래스카의 밤, 눈밭에서 손이 마비되는 걸 느끼며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단 한순간도 여행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 인생에 책임을 지는 것 역시 최종적으로 선택을 내린 나 자신이다. 그러니 우리는 휘둘릴 필요 없이, 그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어느 길을 택해 갈지는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어디를 향해 갈지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목적지를 선택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늘 누군가에게는 미친 사람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일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누군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할 때, 분명 어딘가에는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옳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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