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 페루 이카(Ica), 와카치나(Huacachina)
붉은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에 간혹 가다 선인장이 몇 개 서 있는 곳. 어쩌면 누군가가 낙타 몇 마리를 끌고 다니고, 가끔 모래바람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신비함을 겸비한 곳. 이것이 사진과 그림을 통해 가지고 있던 사막에 대한 나의 환상이었다.
사막은 지역에 따라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데, 내가 상상하던 사막은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 가까우리라. 하지만 이카(Ica)의 사막은 백사장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가 가득했으며, 그다지 황량하거나 고립되지도 않았다.
이카의 오아시스 마을이라는 와카치나(Huacachina)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즐비해있어 참으로 상업화된 느낌이었다. 사막만큼이나 환상을 가지고 있던 오아시스 역시 동네 호수 수준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사막에서 지칠 때쯤 발견하는 것이 오아시스 아니던가. 사막 맛보기를 위해 세트장을 꾸며놓은 기분이었다.
오아시스 주위의 모래언덕과 야자수들은 예뻤지만, 여전히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사막은 그렇게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잠시 산책을 한 후, 오후 일정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선글라스, 모자, 반팔, 반바지, 마스크로 무장한 후 카메라도 안전한 곳에 넣어놓고 휴대폰만 들고 버기카에 탑승했다. 버기카는 위만 막혀 있고 사방이 오픈되어 있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탄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어떻게든 내려버리고 싶었다.
나는 놀이기구를 상당히 싫어한다. 놀이공원의 분위기와 상점들은 좋아하지만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놀이기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롤러코스터와 후룸라이드 류의 놀이기구들을 기피하는 편이다. 특별히 고소공포증이 있다거나 놀이기구의 안전성을 의심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식간에 떨어질 때 그 순간의 철렁거리는 느낌이 못 견딜 정도로 싫다. 그런데 버기카는 롤러코스터처럼 빠른 속도로 가파른 모래언덕을 위아래로 넘나들었다. 실제 놀이기구처럼 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예측할 수도 없고, 모래와 버기카에 어떠한 연결고리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안전성도 의심이 갔다. 대부분 신나서 소리 지르는 것인데 나는 괴로움에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정신없는 라이드가 끝나고, 사진을 찍으라고 내려주었다. 드디어 살았다고 생각하고 좋아했더니, 샌드 보딩이라는 또 다른 고비가 시작되었다. 보편적인 후기들을 토대로 당연히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높고 경사가 많이 진 곳에서 했다. 게다가 배를 판에 대고 엎드려서 타다 보니 더 무서웠고 심장도 기분 나쁘게 철렁 내려앉았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지 않을 경우 저놈의 버기카를 다시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했다. 3번의 코스가 있었는데 2번까지만 했다. 심지어 두 번째 할 때에는 보드에 손바닥도 긁혀서 상처가 났다. 평소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두 번이나 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일몰이 멋지다고는 하지만, 저녁까지 나스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일몰까지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이미 버기카에 샌드 보딩까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던지라 이카에 계속 남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기대했던 모든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날이었다. 이카 사막이 나에게 남겨준 건, 샌드 보딩 하는 사이 반바지 양쪽 주머니에 가득 채워진 하얀 모래뿐이었다.
# 사소한 메모 #
* 사람들이 '재미있다', '신난다'라는 표현을 할 때에는 '스릴 있다'는 내용이 생략되었을지도 모른다.
* 즐겁자고 떠난 여행에서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