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 페루 나스카(Nasca/Nazca)
내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생 때에도 가급적 1교시는 수강신청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는 도보 10분 거리에 살면서도 아침마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어쩔 수 없다. 더 많은 걸 보기 위해서, 더 잘 보기 위해서, 혹은 인파를 피하기 위해서.
이날은 눈 뜨자마자 세수와 양치질만 하고 숙소를 나섰다. 나스카의 지상화는 아침 일찍 가야 더 잘 보인다고 했다. 해가 뜨면 그림자 때문에 잘 안 보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식사 전에 타야 혹 멀미를 하더라도 속이 덜 메스꺼우니 식사도 나중에 하는 게 좋다고 한다.
경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는 모두 몸무게를 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맨몸으로 재는 것이 아니라 작은 가방이나 카메라 등 몸에 지니고 탈 짐까지 함께 들고 재기 때문에 무게에 대한 핑계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무게에 따라 팀이 구성되었고, 한 비행기당 6명씩 탑승했다. 오른쪽 맨 앞에 타면 멀미를 덜한다고 하는데 어차피 몸무게에 따라 자리 지정까지 해주다 보니 그런 꿀팁은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경비행기 자체는 멀미가 날 정도로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데, 양쪽 사람들 모두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비행기를 급회전하기도 하고 양쪽으로 깊이 기울여 조종하기도 해서 그럴 때마다 조금 힘들었다. 거기다가 사진까지 찍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더 어지러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지상화들이 생각보다 선명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부기장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때마다 어느 쪽에 무슨 그림이 보이는지를 안내해주었다. 위치를 대강 알려주면 거의 곧장 그림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알아보기 쉬웠다. 약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10개가 넘는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그림은 중간에 난 도로 때문에 잘려 있기도 했다. 지상화 연구가 다 되기 전에 도로를 이미 냈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부패된 정부 고위 공직자들로 인해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보면 볼수록 이렇게 힘들게 그림들을 그려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고, 저렇게 오랜 시간 선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것 또한 놀라웠다.
이 지역의 토양은 하얀 석회질 위에 검은 돌들이 덮여 있는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검은색 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선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토양의 특성과 비가 오지 않는 사막 기후의 특성으로 이 신비로운 그림들은 몇 천 년 넘게 유지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그림들이 그려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미스터리이다. 개인적으로 종교적 의미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새, 고래, 우주인, 거미 등 주제가 통일되지 않은 거대한 그림들을 그린 것이 쉬이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나스카 지상화를 보기 위해 무조건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겁이 나거나 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라면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수많은 그림들 중 손과 나무 2가지 만을 볼 수 있다.
경비행기를 탔다고 해도 전망대는 한번 이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경비행기에서는 막연하게 느껴졌던 그림들이 전망대에서 보니 비로소 그 크기가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단, 전망대는 임시로 세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안전성이 의심되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경비행기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 사소한 메모 #
* 항상 일부 고위 공직자들이 문제다.
* 경비행기에서 내린 뒤 꽤 오랫동안 어지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은 참 많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