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y the Spire 라는 게임이 있음. 유명한 작품인데 사놓고 한동안 안하다가 (스팀이 다 그렇지 뭐) 최근에 약간 해봤음. 아트웍이 영 내 취향이 아니긴한데, 게임은 매우 재미있음.
퍼머데스 : 물론 퍼머데스임. 데스 사이에 계승되는 요소가 없진 않지만 대세에 영향이 있느냐면 약간 미묘함.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비슷한 요소가 없진 않은 데드셀과 비교하자면, 데드셀도 퍼머데스이긴한데, 플레이 중에 내가 얻을 수 있는 무기의 풀이 계승됨. 기본 상태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무기의 종류가 5종이라면, 1회차 플레이에서 추가 무기를 얻을 경우 2회차 플레이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무기의 종류가 +1 되어서 6종이 되는 식. 근데 이게 좀 빡치는게 내 손에 맞는 무기는 정해져있단 말이지. 무기 풀이 5종일 때는 무기 드랍 때마다 내 손에 맞는 무기가 나올 확률이 20%임. 근데 무기 풀이 10종이 되면 그 무기 얻을 확률이 10%로 떨어짐. 보상을 얻었는데 그게 오히려 날 더 피곤하게 하는 느낌임. 물론 다양한 무기에 모두 익숙해지면 좋긴 하지만, 무기별로 개성이 상당히 강해서 그건 그거대로 또 피곤한 일임. 그토록 훌륭한 게임인 데드셀에도 이런 단점이 있었음.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는 그런게 없음. 데드셀에서 무기는 한 번 얻으면 한동안 써야하는거지만,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어차피 모든 카드가 일회성이고, 로테이션도 빠르게 돌아옴. 따라서 카드의 풀을 넓히는게 확실히 더 유리하고 '좋아졌다!'라는 감각을 제공함. 그럼에도 아무튼 카드 풀이 너무 넓은 것 같으면 까이꺼 필요 없는 카드는 지워버리는 기능도 있음.
오락실 감각의 롱텀 플레이 세션 : 데드셀 얘기하면서도 잠깐 언급했던건데, 데드셀도 슬레이 더 스파이어도, 그리고 나중에 또 얘기할 인투 더 브리치도 모두 (내맘대로 정한) '오락실 감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 오락실 감각이란 무엇이냐면, 시작해서 최상의 플레이만을 거쳐 엔딩을 보기까지 플레이 타임이 대략 30분에서 1시간 안쪽이고 여기에 퍼머데스가 겹치는거임. 엔딩까지 가는 길이가 짧은 듯 느껴지겠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엔딩을 볼 수는 없음. 퍼머데스를 계속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진출해서 어쨌건 나중에는 엔딩을 보게된다는 감각. 오락실에서 게임 하나 잡고 처음부터 원코인 클리어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아무튼 코인을 여러번 넣으면서 = 퍼머데스를 겪으면서 게임을 알아가고 나중에는 엔딩에 도달하게 되는거임. 반대로, 원코인 클리어가 아니라면 엔딩을 볼 수도 없음. 지난 십수년간 로그라이크들이 유행하면서 퍼머데스의 유용함이 재발견되었고, 퍼머데스 측면에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 결과 이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 매우 기쁨. 특별히 대단한 계승요소를 만들지 않아도 퍼머데스가 허무함으로 귀결되지 않고 다음 플레이를 위한 발판이 되게 하는 감각이자 롱텀 세션의 길이? 에 해당한다고 봄.
턴제 전투이지만 일대다 시스템 : 턴제 게임에서 적이 여럿인데 내가 혼자면 다구리 당해 죽는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내 턴때 나는 하나의 행동만 할 수 있지만 적은 여럿이니까 행동을 여러번 할거잖아? 를 카드게임과 결합해서 풀어낸 것이 슬레이 더 스파이어이다. 여기에 JRPG 등지에서 도무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방어 커맨드가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서는 실효성을 지닌 매우 유용한 기능이 되었고 ... 등등을 얘기하려다가, 왜 우리편을 굳이 한 명만 놓는거야? 라고 물으면 사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건 아니기 때문에 이 단락은 이렇게 간단한 설명만 해놓고 넘어가겠음. 그러게 진짜 ... 예전에 다키스트 던전 하다가 '우리편이 하나만 있으면 이러이러해서 좋고 저러저러한 점은 힘들겠군'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후자를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매우 적절하게 풀어내는 모습에 감탄했지만 전자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 ...
JRPG가 아쉬움 : 슬레이 더 스파이어 하다보면 자꾸 그 생각이 남. 2000년대 후반 이후 내가 해 봤던 JRPG들은 다들 너무 변화가 없이 스킨과 대사만 바꾼 것 같아서 짜증났었는데, 다키던전을 비롯해서 슬레이 더 스파이어 등을 보다보면 진짜 JRPG 너무 안일했던거 아니냐? 라는 생각과, 반대로 '지금이라도 이런 우수한 전투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근사한 내러티브를 입힌다면 먹힐 것 같기도 한데 ...' 하는 생각. 다키든 슬레이든 거의 직접적으로 JRPG 전투 시스템에 박아넣어도 크게 무리 없어보이거든.
한참 바쁘다가 잠깐 짬이 나니까 길다란 말이 아주 술술 나오는데, 시험 전날엔 법전을 봐도 너무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효과와 비슷한건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