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Breach를 요새 재미나게 하고 있음. 스샷만 봐도 알겠지만 턴제 전략 게임임. FTL (Faster Than Light)라는 공전의 히트작을 만든 개발사에서 새로 내놓은 게임인데 ... 새로 내놨다기엔 좀 되긴 했지만 아무튼 ... FTL은 시작하자마자 너무 관리게임 냄새가 나서 (관리해야 할 항목들이 너무 많은 게임은 왠지 기피하게됨) 못해봤는데, ITB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하고 있다.
엑스컴이 생각나는 구석이 있음. 유사한 장르니까 뭐 그럴 수 밖에 없지. 나는 엑스컴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로 '정찰'의 개념을 꼽는 편임. 아직 뭐가 있는지 모르는, 워포그로 가려진 영역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까나가다가, 에일리언이 발견되는 순간 부근의 가용한 자원들로 어떻게든 놈들을 막아내면서 흩어져있던 여러 대원들을 그러모아 빠르게 진압하는 과정. 어떤 계획으로 어떻게 정찰을 하여 적에게 들키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발견하고 대처하느냐가 관건임. 한편 사느냐 죽느냐 이기느냐 지느냐만 중요한게 아니라, 이기더라도 내 손실이 어느정도인가가 중요해짐. 스테이지가 공간적으로 크고 넓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길기 때문에, 매번의 교전에서 손실을 최소화하는게 아주 중요함. 그리고 그걸 위해 중요한게, 또 다시 정찰임. 이제 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정찰의 개념이구나! 라고 생각해왔음. 정찰은 적이 보이는 순간은 물론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게임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줌. 이 장르가 반사신경이 1도 쓸모가 없는 장르이기 때문에 이런데 신경을 좀 써줘야 함.
ITB에는 정찰이 없음. SRPG처럼 시작부터 적과 나의 위치와 맵의 구조를 모두 보여줌. 대신 맵이 매우 좁음. 모든 맵은 스크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좁다랗고, 거기에 다닥다닥 붙은 유닛들끼리 전투를 함. 모든 적은 언제나 다음 턴에 즉시 서로 공격 가능한 범위내에 있음. 게다가 직접 공격 뿐 아니라 다양한 맵내 요소 (불, 폭풍안개, 산성용액 등등) 들이 그득해서, 피해를 주고받을 요소가 차고 넘침. 여기에 충돌로 인한 데미지까지. 온갖 위험한 것들을 아주 좁은 공간에 몰아넣은 형국임. 그래서 정찰은 없지만 텐션은 오히려 엑컴보다 더 높은 편임. 물론 맵이 좁으니까 전투가 진행되는 시간은 엑스컴보다 짧아서 너무 버거운 느낌은 들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공간에 이렇게 위험한 것들을 잔뜩 집어넣어두고 기존 턴제 게임의 시스템, 즉 한 턴 내에 이동 후 행동(공격)을 넣어두면? 서로 빠르게 치고받다가 누군가 죽게 됨. 단조로운 소모성 전투. 그건 재미없음. 너무 뻔함. 그럼 어떻게? ITB는 "이동 후 행동"이라는 공식을 "행동 후 이동"으로 바꿈. 대신, 적 유닛들만 그러함. 적 턴에서 적 유닛은 모두 다음 자기 턴이 시작되자마자 어떤 행동을 할지 보여줌. 그리고 내 턴이 됨. 적이 어떤 행동을 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처 하기 위해 작전을 짜야함. 이렇게만 보면 플레이어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유리한거 아닌가? 싶지만, 나는 쪽수가 부족함. 모든 스테이지에 유닛 3개만 출동할 수 있음. 근데 적은 그보다 많음. 나에게 주어진 패널티는 적은 쪽수. 나에게 주어진 어드밴티지는 적의 행동을 미리 알고 있다는 점.
전략 게임에서 적과 아군이 서로 같은 규칙을 적용받는다는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ITB는 그렇지 않음. 미묘하게 규칙을 비틀고, 거기에 걸맞는 좁은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긴장감이 넘쳐나게 만들지만 단조로운 소모전은 피하고 있음. 매우 훌륭한 게임임.
한편, 게임을 진행할수록 새로운 유닛들이 점점 해금되는데, 해금되는 유닛들이 기존에 쓰던 것보다 더 강한게 아니라 더 특이한 기능들을 가진 놈들임. 이 특이한 기능들을 잘 활용하려면 단순했던 기본 유닛들보다 더 머리를 복잡하게 굴려야함. 가끔은 호쾌한 파괴전, 모든걸 휩쓸어 버리는 압도적 화력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드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쉬움. 그러나 곧 새로운 기믹에 익숙해져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가게되고, 그걸 발견하는 기쁨이 새로이 주어짐. 레벨 디자인이나 유닛들의 스킬 디자인이 정말 탁월함. 가짓수도 개 많고 지형지물에 주어지는 기능들도 매우 복잡한데 이걸 어떻게 그렇게 다 밸런싱한건지 놀라울따름임. 하지만 그래서인지 한 판 시작부터 엔딩까지 길어야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것 같긴 함. 오락실 감각치고는 약간 길긴한데 그래도 그 부류로 쳐줄 수 있음. 전략 게임이니까 이정도는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