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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규 Oct 28. 2018

무조건적 권한 이양이
지방분권은 아니다

나는 왜 일명 '지방이양일괄법'을 반대하는가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3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일명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이 통과되었다. 대다수 지역언론들은 지방이양일괄법이 당연히 이뤄져야한다는 식의 기사와 사설로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필자는 정치학 전공자이자 지방정치와 의회정치를 주로 관찰해온 관점에서 지방이양일괄법은 당장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며 우려스러움도 가지고 있다. 먼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지방이양일괄법의 조문 전체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히 되어야 한다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23일 국무회의 통과 직후 행정안전부가 배포한 A4 10쪽 분량의 보도자료의 내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19개 부처 소관 66개 법률의 571개 사무를 중앙사무에서 지방사무로 이양하는 것은 매우 예민한 문제다. 하나하나 다 뜯어보고 각 지역마다 입장의 차이가 생길 수도 있으며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문제를 지방분권의 핵심인양 다뤄선 안 된다. 

 권한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재원(예산)이 수반되는데 지방공무원들의 역량과 총액인건비제에 의한 제한 등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방이양일괄법과 함께 정부가 발의한 일명 ‘지방분권특별법(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안에는 제11조 4항 신설조항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이양받은 권한 및 사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도록 기구·인력의 효율적인 배치 및 예산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이양일괄법을 통해 자치분권위원회에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지방 및 전문가가 함께 이양사무 수행에 필요한 인력 및 비용을 산정하도록 했으며 예산 지원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에 대해서도 우려스럽다. 중앙부처와 국회가 예산편성과 심의과정을 통해 산정근거와 지원비율을 정하는 게 아닌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라는 소수의 인원이 참가한 위원회가 정하는 것은 독단적이며 비민주적이다. 실제로 지방분권특별법 개정안 제46조 11항에는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끔 하고 있어 중앙정부에 칼자루까지 준 셈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권한 이양에 있어 중앙정부가 속도전을 하고 있는 데 있다. 의안 제안이유에 ‘자치분권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기로 심의·의결한 권한과 사무를 조속히 이양할 것’이라 적혀있다. 지방이양일괄법의 정확한 의안명은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66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안’으로 66개의 법률을 일괄 개정하여 한 번에 몰아서 한다는 것이다. 66개 법률의 571개의 사무가 한꺼번에 중앙사무에서 지방사무로 내려옴에 따라 생길 수 있는 행·재정적 차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게 비정상적인가. 

 심지어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법률 제정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제2차·제3차의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을 지속 추진하여, ‘우리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을 보다 신속히 이루어 나가겠다”고 향후계획을 밝혔다. 분권은 절차가 있고 적절한 속도가 있는데 571개의 사무가 일괄이양되기도 전에 이후 계획을 그린다는 것은 지방행정의 과부하와 재정 여력 불가능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정말로 중앙사무의 지방이양을 하고 싶다면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국회와 함께 선 비용추계를 한 뒤에 사무별로 각각의 법률안을 개정하여 이양하는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 권한이양을 통한 자치분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책무를 다할 수 있는 행·재정적 여건을 보장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무조건적 권한 이양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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