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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Aug 03. 2024

저의 고객은 멍청이들입니다 - 뱅크시(1)

행동주의자? 관종?

얼굴 없는 화가, 거리의 예술가, 미술계의 로빈후드... 

뱅크시를 일컫는 다양한 수식어들입니다.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만한, 현대 미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입니다. 뱅크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을 정도로 많은 화제를 뿌리는 유명한 대중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뱅크시로 추정되는 인물

뱅크시는 본래 거리나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좋아 거리의 예술가이고 그래피티이지, 사실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래피티는 그저 공공시설에 낙서를 하고 더럽히는 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지금도 거리나 공공시설물에 허가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은 나라들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뱅크시는 어릴 때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있었는지 그래피티를 하다가 경찰에게 잡히기도 하고 학교도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하네요. 이런 기질은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는 반전, 반자본주의, 반권위 등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한 그림을 그 메시지의 기원이 된 현장에 그리곤 합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그림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간에 직접 그리는 식이에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길거리도 있지만 참혹한 전쟁의 현장까지 가서 그림을 그리다니. 마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스필만'이 전장의 폐허 속에서 쳤던 피아노 연주를 연상케 하죠. 바로 이처럼 일반인들에겐 접근조차 어려운 곳에 그는 마치 보란 듯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뱅크시 예술의 특별한 지점입니다. 그의 예술이 던지는 메시지가 극적으로 부각되면서 묵직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죠. 

Monkey Parliament(원숭이 의회)/ 영국 정치인들을 침팬지에 빗댄 작품

뱅크시는 한편으로 허세에 물든 권위를 조롱하고 자본권력에 맞서는 그림을 그리며 일종의 사회 운동에 가까운 활동을 합니다. 작품 '원숭이 의회'를 보세요. 우리가 항상(?) 욕하는 바로 그곳. 국회입니다. 어느 나라나 위정자들은 욕도 많이 먹고 조롱당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정치가들을 원숭이로 그려놓은 유명 예술가가 있었던가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면 어땠을까요?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아무튼 그는 권력자들을 향해 아주 강한 조롱을 하면서도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서인지 오히려 대스타가 됩니다. 이처럼 쉽고 통쾌하게 보여준 사례는 일찍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화권력이자 큰돈을 버는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관종'아티스트로 평가받기도 해요. 각자 판단하면 될 일이지만 설사 뱅크시가 돈을 벌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런 방식을 취했다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그의 작품과 활동은 NFT아트(크립토 아트)의 성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NFT작품을 만든 적이 없어요. 말부터 어려운 크립토 아트 혹은 NFT 아트와 대체 뱅크시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그래서 이번 에는 뱅크시 아트가 NFT로 만들어진 과정과 크립토 아트의 관점에서 뱅크시를 살펴보며 NFT아트와 뱅크시에 대해 한꺼번에 알아볼게요. 가성비 괜찮죠? 바로 시작합니다. 



멍청이들이라고 조롱했더니 벌어진 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뱅크시는 직접 작품을 NFT로 만든 적이 없어요. 그런데 뱅크시의 작품 중 NFT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있습니다. 작품은 'MORONS(멍청이들)', ' LOVE IS IN THE AIR(사랑은 공중에)'가 대표적이에요. 각각 2021년, 2022년에 NFT로 제작되었는데, 모두 실물 작품을 NFT로 전환해 만들었습니다. 뱅크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NFT로 만든 것입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요?


우선 MORONS를 보면 작품의 내러티브와 NFT로 전환되는 과정이 매우 파격적이었어요. MORONS는 우리말로 '멍청이들'이라는 뜻인데, 바로 자신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경매장에 나온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의회 의원들을 원숭이라고 조롱했던 뱅크시 답죠? 그래도 그렇지, 자기 작품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는 못할 망정 '멍청이'라니요.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경매 시장 크리스티에서 말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자신의 고객이 될 사람들에게 멍청이라고 부를 수 있으신가요?

크리스티 경매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그림 

위의 그림은 1987년 당시 고흐의 작품이 약 3,630만 달러(한화 약 460억 원)라는 역대 최고 금액으로 낙찰된 것을 기념해 크리스티에서 올린 트위터 내용입니다. 1987년이면 양념치킨 한 마리가 6천 원도 안 됐는데 작품 하나가 460억 원에 팔렸으니 물가를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금액이죠.

MORONS(WHITE)

크시는 이 트위터의 그림을 패러디해 'MORONS'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림 원본의 고흐 작품 위치에, 뭔가 글자를 적어 넣습니다. 자세히 볼까요?

너희 멍청이들!

작품 사겠다고 온 경매 참여자들에게 작가는 최고의 모욕을 선사합니다.

조롱당한 경매 참여자들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까요? 천만의 말씀.

그들은 높은 가격에 입찰해 작품들을 완판 시킵니다. 아래 표는 실제 판매 기록입니다. 가장 저렴한 에디션의 평균 가격이 15,080파운드인데 현재 환율로 2,500만 원이 넘습니다. 비싼 작품들은 2억을 훌쩍 넘어요. 욕은 욕대로 먹고 비싸게 사고. 이 정도면 진정한 호갱 컬렉터들 아닐까요?


크리스티 경매에서 MORONS가 판매된 가격

뱅크시는 본래 예술 작품을 단순한 돈벌이로 여기고 경매에 나선 사람들과 크리스티의 상업주의를 풍자하려고 했어요. 이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비싼 가격에 팔렸죠. 물론 뱅크시도 예상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도 자신의 작품이 비싸게 팔릴 것이라는 것을. 뱅크시 특유의 '풍자와 냉소'를 머금은 내러티브 자체가 이미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는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입니다. 


원본을 불태우는 사람들

'MORONS'의 원본 중 하나는 Injective Protocol이라는 블록체인 기업이 2021 3월, 95,000달러(약 1억 원)에 구매합니다. 그리고 이 원본을 NFT로 전환한다는 명목으로 불태우기로 결정하죠. 원본 작품을 불태운다고 하니 독자분들 중에는 데미안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을 불태운 것은 이보다 훨씬 뒤였지만 규모는 훨씬 컸습니다.(2022년 10월) 

MORONS 소각 장면

뱅크시 작품 원본을 불태우는 장면은 트위터로 중계되었는데, 영상에 나온 인물은 "실물을 제거하면 NFT가 대체 불가능한 진정한 작품이 되고, 물리적 그림의 가치는 NFT로 옮겨올 것이다."라고 의도를 밝힙니다.(이러한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정의는 이후 데미안 허스트의 The Currency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각된 작품은 2021년 3월 8일 NFT거래 플랫폼인 오픈씨(Opensea)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됩니다. 물론 작품 원본을 아깝게 왜 태울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소성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하나가 희소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물 작품과 NFT작품 모두 각각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둘보다는 하나로 만들어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전'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NFT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행위였죠. NFT로 전환된 작품의 경매 낙찰가격은 실물 작품 구매 당시보다 4배 비싼 228.69 이더리움(약 4억 원). 가격만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작품을 불태운 의도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픈씨에서 판매된 MORONS


150억짜리 작품을 170만 원에 소유하는 방법

2021년 벤처기업 파티클은 뱅크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Love Is In The AIR(사랑은 공중에/이하 LIITA)'를 1,290만 달러(약 150억 원)에 구매합니다. 2022년에는 이 작품을 가로 X 세로 100개로 나누어 1만 개로 제작(민팅)하여 개당 1,500달러에 판매했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소유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죠. 또 구매자인 파티클 입장에서도 구매 가격보다 높은 가격(총금액)으로 완판하고 이후 거래가 될 때마다 수수료 수입이 생기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업 이름을 알리는 엄청난 홍보효과도 있었을 겁니다. 

이 NFT를 구매하게 되면 그림 조각의 소유권을 갖게 되고, 자신이 구매한 NFT가 뱅크시 작품 중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표시된 증명서를 받습니다. 150억 원이 넘는 뱅크시의 대표작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죠. 2023년 8월 현재 기준 1만 개 NFT 중 가장 저렴한 조각은 20만 원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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