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모두 뱅크시의 아트를 기반으로 한 NFT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MORONS는 실물 원본을 소각해 NFT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면, LIITA는 실물 작품을 그대로 둔 채, NFT를 추가 제작했다는 점입니다. 두 작품의 NFT 전환 방식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원본 작품의 개수 차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MORONS는 배경색에 따라 여러 버전이 있는데 소각된 것은 흰 배경의 MORONS입니다. 그마저도 총 650개 에디션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소각에 대한 부담이 덜 했을 것입니다. 부담이 1/650으로 줄어들었을 테니까요.
한편 Love Is In The Air(LIITA)는 650개 에디션의 빨간색 배경 작품(왼쪽)과 1개 에디션으로 만들어진 흰색 배경(오른쪽)의 작품이 있습니다. NFT로 전환한 것은 오른쪽의 흰색 배경 작품으로, 단 1개의 원본만 존재하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크죠. 뿐만 아니라 프린트로 판매된 왼쪽 작품에 비해 오른쪽 작품은 뱅크시가 오일과 스프레이로 직접 그렸기 때문에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뱅크시가 직접 그린 원본을 공개 소각하기에는 희소성, 가격, 저작권 등 여러 가지로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문화재에 가까운 예술작품 원본을 마음대로 소각한다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예상했을 겁니다. 한 마디로 뒷감당(?)이 안 되는 것이죠. 이런 NFT전환의 방식만 보아도 결국 '희소성'이 주요한 가치 평가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NFT들은 뱅크시 아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NFT화'한 것입니다. 뱅크시가 직접 NFT를 만들거나 스스로를 NFT아티스트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또 크립토 아트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아트로 디지털 아트를 의미하기에 뱅크시가 디지털 아트를 만들지 않는다면 크립토 아티스트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뱅크시의 행보와 크립토 아트 사이의 철학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여기서 크립토 아트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 크립토 아트는 NFT 아트와 비슷한 용어로 자주 서로 혼용되곤 합니다. 이는 크립토 아트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어요. 둘 모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예술 작품을 의미하는데 크립토 아트가 조금 더 탈중앙의 의미를 내포한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라면 NFT 아트는 블록체인으로 기록한 작품을 의미하는 기술적 용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구분되는 용어는 아니기에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나 한국에서는 주로 NFT 아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편에서는 뱅크시 아트의 정신과 크립토 아트의 철학이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크립토 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크립토는 본래 중앙화된 독점 권력의 '분산'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국가와 은행이 가진 자본 권력을 탈중앙 암호화폐(Crypto Currency)로 대체하고자 했으며, 구글, 애플과 같은 대기업들이 가진 정보 권력을 개인에게 이양하고자 했죠. 특정한 권한을 소수가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 주체의 권력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성격이 왜곡될 뿐 아니라 독점권력이 부당한 통제와 지시를 하더라도 막기가 쉽지 않겠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을 채택한 이유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크립토는 권력의 분산을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하는 하나의 대안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서로 누구인지 모르는 개인들 간의 합의'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또 기존 은행과 달리 모두의 거래 내역을 모두가 살펴볼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행이 하던 신용 평가와 거래에 대한 인증을 블록체인을 통해 익명의 개인들이 대신해 줍니다. 권한이 분산되고 투명해지며 민주적인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예술분야에 적용한 것이 '크립토 아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예술 작품의 원본/소유에 대한 증명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권위 있는 미술계의 특정기관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원본 여부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디지털 아트라면 말이죠. 블록체인은 한 번 기록되는 순간부터 수정도 삭제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술 작품의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어 소유자가 누구이고 언제 누가 얼마나 오래 소유하고 있었는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특정한 기관이나 권위 있는 전문가가 인증해 줄 필요가 없으니 권위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권한은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수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것, 즉 '탈중앙화'가 크립토의 본질입니다.
뱅크시는 정치적 폭력, 경제적 독점, 문화적 카르텔 등 기득권을 향해 '그 꼴은 더 이상 못 봐주겠어'라는 듯이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저항해 왔습니다. 이는 기존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크립토의 기원과 유사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뱅크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당한 우크라이나의 폐허 건물에 그림을 그려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자국민 보호의 명분으로 분리장벽(Palestine wall)을 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고발합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에 대한 분노를 그림에 표출하기도 합니다. '눈을 먹는 아이'라는 그림을 볼까요? 한쪽 면만 보면 아이가 눈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옆에 이어져 있는 그림을 보면 눈이 아니라 쓰레기에서 태운 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죠. 마치 전쟁의 참상을 글과 사진으로 고발하는 종군기자처럼 뱅크시는 그림으로 파괴된 인류애의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예술계도 그의 비판을 비껴갈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미술계의 상업주의와 권위에 맞서는 뱅크시는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그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는 순간 액자에 설치한 파쇄기를 작동시켜 그림을 파괴했습니다. 작품이 잘리는 도중 분쇄기가 오작동하면서 파쇄가 중단되었는데 이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로 해석되었죠. 당시 이 '파쇄기 작품'을 만들 때는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나름 철저한 파괴를 준비했는데 유튜브에서 분쇄기 준비와 연습 장면이 담긴 영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뱅크시는 공개적인 가격 경쟁을 통해 작품의 가치와 권위를 인증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작품을 훼손함으로써 그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허상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3년 후 다시 경매에 오른 이 작품이 1차 낙찰가의 18배인 2,540만 달러(약 300억 원)에 판매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는 단지 '저항, 반대'만 외치지는 않았습니다. 전쟁피해자, 여성, 난민, 노숙인, 아이들 등 사회적 약자와 개인들을 돕는 데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기 영국의 병원에 그림을 기부해 260억 원을 모금했고, 베들레헴에 위치한 병원, 노숙인 자선단체, 난민 지원 단체, 환경 단체 등에도 그림을 기부하고 모금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자신의 아트를 이용해 모금한 금액은 4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위한 실천까지. 권력의 탈중앙화를 모토로 하는 크립토의 정신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크립토 아트에서는 국적, 나이, 성별, 신분,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12세 아이도, 옆집 할머니도,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크립토 아트를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밝힐 필요도 없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나이가 어리고 인맥이 없어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시장에서 언제든 평가받아 볼 수 있습니다.
뱅크시는 정체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어 '얼굴 없는 화가'로 불립니다. 대중들은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아트를 공감하고 좋아합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쉽고 명쾌한 목소리를 내는 뱅크시의 대중성과 익명성은 예술로 취급받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비주류로 취급받던 '거리의 예술'을 주류 시장에서 인정받게 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뱅크시의 주류 미술 시장 진입 과정은 아티스트가 '누구인지'보다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가 더 중요한 크립토 아트 시장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NFT아티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브랜딩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대기업 혹은 인플루언서들과 협업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거나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일상을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기도 합니다.
반면 뱅크시는 철저히 자신을 숨겨 왔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 자유로운 활동에 유리하고,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얼굴 없는 예술가'로 이미 브랜딩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아트는 이제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NFT가 되어 팔리는 일상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그가 NFT를 하게 될지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행보와 그로 인해 일어난 현상들이야말로, 진정한 '탈중앙 크립토 아트'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XUDKyFM_Qb
• 뱅크시 작품 설명 https://banksyexplained.com
• 뱅크시 작품 진품 여부 인증 기관 https://www.pestcontroloffice.com
• MORONS 오픈씨 링크 https://opensea.io/collection/burntbanksy
• MORONS 소더비 경매기록
https://www.sothebys.com/en/buy/auction/2019/banksy-online/banksy-morons
• LOVE IS IN THE AIR 마켓 플레이스
https://marketplace.kalao.io/collection/0xf675a87397a6239eaf95ad948670a5b19d076c59/items
• LOVE IS IN THE AIR 상세정보
https://www.particlecollection.com/collection/love-is-in-the-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