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클라피스(Federico Clapis / 이하 클라피스)는 이탈리아의 현대 예술가로 다소 특이한 과정을 거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클라피스는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선언하기 전까지 유튜브에서 익명으로 바이럴 영상을 만들던 크리에이터였어요. 또 ‘Game Therapy’라는 이름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죠. 이탈리아 배우 출신답게 아주 잘생겼습니다.
그의 창작과 엔터테인먼트 활동은 예술가로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자 전략이었어요. 클라피스는 처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자신의 예술을 좋아해 줄 팬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팔로워와 팬을 확보한 후 2015년 전업 예술가를 선언하며 기존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많은 팔로워가 생기고 인기를 얻고 돈을 벌면 초심을 잃을 수도 있을 텐데 클라피스는 꿈을 좇아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예술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죠.
많은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클라피스는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술 후원자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예술가 자신만의 브랜딩이 독립적인 예술 활동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클라피스는 바이럴 영상을 만들고 소셜 커뮤니케이션으로 팬을 확보했던 만큼 디지털 세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을 만드는 조각가로서 갤러리와 외부 공간에서 전시도 했지만 “(현실세계의) 조각은 너무 비싸고 무겁고 옮기기 어렵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물리적 제약 없이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디지털 아트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아트는 디지털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크린 안에서만큼은 거의 무한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한편 어릴 때 클라피스는 수면 마비(가위눌림)로 인해 물질세계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성인이 되어 인도의 아쉬람 지역으로 이주해 내면을 탐색하는 등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기도 했어요. 인도 아쉬람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가나 명상을 하기 위해 찾아가는 유명한 암자인데, 예술가로 거듭나려는 하나의 준비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세계는 물질로부터 오는 근원적인 좌절감을 배제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클라피스는 전업 예술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1년 간 실물 아트를 진행하지 않고 오직 디지털 아트에만 집중하겠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립니다. 3D스캐닝과 모델링을 사용한 디지털 작업을 해온 클라피스의 열정은 자연스레 디지털 아트인 크립토(NFT) 아트로 옮겨 갑니다.
클라피스는 주로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할 미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미래'라는 주제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로 전달하니 더욱 공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NFT는 슈퍼레어와 니프티 게이트웨이 2곳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민팅했고 자신의 실물 작품을 NFT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2021년 2월에 첫 NFT작품으로 그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인 ‘Babydrone’을 민팅했는데 이 작품 역시 박물관과 갤러리에 실물로 전시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디지털도 멋지지만 실물 작품을 보면 더욱 멋지고 신비로운 느낌일 듯합니다.
Babydrone은 아기가 드론에 연결된 포대에 싸여 있는 모습인데, 마치 공장에서 아기를 찍어내 목적지로 나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기'는 Secondary Space(두 번째의 우주), Concretes, Back to Earth(콘크리트, 지구로 돌아가기), Flooded Ruins(침수된 유적), Future Relics(미래 유물들)라는 컬렉션들에 모두 등장할 정도로 클라피스 작품의 주요 소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예술로서 조금씩 각광을 받고 있는 NFT의 지금 상황이 아기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위 컬렉션들의 제목과 순서를 고려해 어떤 서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우선 첫 번째 컬렉션인 ‘두 번째의 우주(Secondary Space)’의 작품 설명에는 “성층권으로 올라가면 물질이 디지털에 자리를 내주고 미래를 향해 함께 떠날 수 있는 가볍고 강력한 공간을 발견합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물질이 디지털에 자리를 내준다"라는 표현에서 클라피스의 첫 번째 예술 세계였던 실물 작품에서 두 번째 우주인 디지털 세계로의 변화되는 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