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생존, 그냥 생존, 막 생존!

힘드냐고 묻지 말고 10분만 아이를 받아안아 보시길...

by 조박선영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당황하게 되는 순간 중 하나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이다.

"아이 키우기 많이 힘들어요?"

사실 이렇게 질문하는 이들은 돌직구하는 스타일이고 대부분 이렇게 애둘러 질문한다.

"아이 키우는 거 많이 힘들죠?"

난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그리고 돌직구로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정말 그게 궁금해요? 얼마나 어떻게 언제 왜 힘든지?"

물론 정말 이렇게 묻진 않는다. 상황에 따라 농담처럼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걸 뭐하러 물어요"라던가 "그거 얘기 시작하면 오늘 아무도 집에 못가는데?"라며 대답을 회피하곤 한다.

사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육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도 육아에 관심이 없다고... 당장 육아를 할 수 밖에 없는, 육아에 직면한 이들만 고민하는 게 육아다. 뭐 알고보면 세상 모든 문제가 그렇긴 하다.

장애를 가졌다거나 여자라서 불편부당함을 겪었다거나 군대에 당장 끌려가게 생겼다거나...사람들은 모두 당장 자기가 직면한 문제에만 골똘하게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그제서야 눈치챈 그들 모두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육아" 또한 그런 문제들과 같은 맥락에 있으면서도 그 맥락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 쉬운 말로 육아하는 엄마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첫 아이를 낳고 키울때였다.

첫 아이를 막 낳았을 때 나는 정말 딱 도망가고 싶었다. 간호사가 아이를 안아보라고 했을때는 귀찮고 짜증이 났다. 젖을 물려보라고 했을 때는 심지어 '저 간호가 미친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다

13시간 이상의 긴 진통으로 나는 딱 1시간만이라도 자고 싶다는 기본적인 생리욕구에 시달렸고 아무리 안간 힘을 써도 나오지 않는 아이와 함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상태였다. 정말 도망을 갈 수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저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을때 아이는 태어났고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자마자 난 깨달았다.

'난 이제 정말 도망갈 수 없구나. 죽지 않고서는...'

아이와 나는 이제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것, 그건 생존이 걸린 일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느꼈던 것 같다. 아이와 내가 떨어지는 순간, 아이는 물리적 생존에 당장 위협을 받을 것이고 엄마인 나는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 모두 '생존'이었다.


육아는 생존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될 때까지 나의 미션은 아이를 사고와 내 부주의로부터 죽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 입히며 씻기고 재우고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것조차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가들이 왜 그렇게 심하게 울어대겠는가. 아가들이 울 때 잘 살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아가들은 정말 곧 죽을 것처럼 운다. 지금 당장 먹여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 씻겨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 재워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처럼...그리고 결국 지금 당장 눈을 맞추고 지금 내가 너의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백일이 될때까지 가장 힘든 건 육체적 피로였다. 13시간 이상의 긴 진통이 끝나 아이가 태어나면 난 내가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밤낮이 바뀐 아이는 도통 잠을 자지 않고 육체적으로 너덜너덜해질정도로 피곤한 난 언제 어디서나 잠을 갈구했다. 누군가가 나 대신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밤에 자고 낮에는 활동하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난 나 대신 아이를 봐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없었다.

게다가 모유수유는 기이한 배고픔을 경험하게 했는데 젖을 물리고 나면 배가 너무 고파서 이불이라도 뜯어먹고 싶어질 정도였으니 정말 난 백일동안 졸리고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백일 즈음이 되면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밤과 낮을 구분하고 밤에 3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옛적에도 백일이 지나면 떡을 돌렸을 것이다. 엄마가 밥이 아닌 떡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일이 지나면 아이들이 목을 가누기 시작해서 눈을 맞추기도 쉬워진다. 보조기구만 있으면 아이를 앉혀놓는 것도 가능해지는데...바로 이때부터 정상적인 활동이 조금씩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를 앉혀놓고 집을 정리정돈한다거나 요리를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도 한 몸처럼 붙어 있던 아이가 잠깐이라도 떨어져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간격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이다.


그리고 돌이 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다. 1년을 아이와 살아냈고 아기는 살아있고 내 젖이 아닌 이 세상의 음식들을 조금씩 섭취한다. 이건 정말 잔치를 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미션에 성공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시기이고 아이와 함께 외출이 얼마든지 가능해지는 시기가 바로 돌이다. 드디어 바깥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 이야기는 친정엄마나 도우미 같은 외부의 도움을 전혀 못받는 경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통계청의 2015년 일가정양립지표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20.7%가 경력이 단절된다고 한다.(통계청 홈페이지 참조: http://kostat.go.kr/portal/korea/kor_nw/3/index.board?bmode=read&aSeq=350222 )경력이 단절된다는 건 사회경제적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고 그건 혼자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맞벌이로 잡히는 기혼여성들의 경우도 남편들과 동등한 정도의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맘만 있는게 아니라 몇 십만원 정도의 부수입에 그치는 경우도 포함된다는 남성연대 혹은 일베의 지적도 참고하자면 20.7%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의 여성들이 경력이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겠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돈못버는 사람은 그게 남자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심하게는 벌레취급받는 사회이니...인터넷에 괜히 '맘충'이라는 말이 떠돌겠는가. 엄마도 돈 못버는 자식도 다 이 사회에서는 벌레같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처절하게 살려고 몸부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육아는 그래서 벌레로 생존하는 것이다. 인간인데 벌레의 정체성으로 인간처럼 살아남으려는 몸부림...그게 얼마나 힘드냐고? 그냥 말을 말자. 너도 나도 다 힘든 세상이니까...적어도 이해하는 척 센스를 발휘하고 싶다면 말없이 아이를 받아안고 그 아이 엄마가 10분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길...딱 10분이면 당신은 센스쟁이가 되고 그 엄마는 당신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주의: 처음 만나자마자 아이를 안아주겠다고 하면 유괴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음^^; 세상이 너무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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