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작 애니메이션 또봇, 바이클론즈, 카봇, 터닝 메카드 중심으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것도 사내아이들만 키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변신로봇 애니 시리즈를 애청하게 되었다. 나도 시크릿 쥬쥬나 프린세스 다이어리 같은 일기장과 액세서리로 변신하고 사랑하고 관계 맺는 알콩달콩 반짝반짝한 애니를 보고 싶지만, 내 현실에서 무한 반복되는 애니는 또봇과 카봇, 터닝 메카드이다.
이제 난 아들을 키우는 페미니스트 엄마로서 이 애니 시리즈를 비평해보려고 한다.
우선 또봇부터...
2010년에 첫 시리즈가 방송된 걸로 추정되는 또봇 시리즈는 내 생애 처음 접하게 된 변신로봇 애니이다. 처음 또봇 시리즈가 방송될 때만 해도 케이블 TV에서 아이들 시선을 잡아두려는 조악한 만화쯤으로 생각했으나 그래도 아직 채널권이 나에게 있던지라(큰 아이 겨우 3살쯤이었고 뽀로로에 미쳐있었다. ^^;) 얼마든지 다른 채널로 돌릴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주인공 아이들이 형제이고 그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기계공학자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불구가 된 뛰어난 기계공학자인 '차도운'과 그런 아빠와 함께 밝고 명랑하게 자란 두 형제 '하나'와 '두리'의 활약이 기대되었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좋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지금 20기를 맞은 이야기에서는 뛰어나고 든든한 협력자로 활약하는 '권세모'는 1기에서 악당으로 등장했다.
이야기인즉슨 '차 도운'과 '권세모' 둘 다 같은 사고로 모든 걸 잃게 되었지만 하나는 악당, 하나는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인 또봇 X와 Y를 만들어낸 것이다. 2기에서 둘은 화해하고 협력자가 되면서 새로운 악당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아크니(왕소라)'이다.
내가 또봇이 거슬리기 시작한 건 이 아크니의 등장부터였다. 물론 미워할 수 없는 악당 '디룩'도 살짝 거슬리는 부분은 있었다. 왜 가난하고 먹을 걸 좋아하고 기막히게 단순한데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악당이란 말인가. (디룩이 악당인 이유는 사실 끊임없는 그의 물욕 때문이긴 하다. 특이한 점은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먹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권력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만 있을 뿐 쿠데타를 꿈꾸지 않는 단순함도 내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첫 등장부터 아크니는 최고 악당의 딸로 아버지에게 권력을 승계받아 악당 짓을 하는 중이었다. 또봇 시리즈에서 한 번도 '아크니가 왜 나쁜 짓을 하는지'에 대한 부연설명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악당이고 그의 딸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악행이 반복될 뿐이었다. 아크니의 악행이 절정에 달해 결국 무너지고 만 건 이야기가 9기로 접어들 때였다. 9기 '엄마의 자장가'에서 아크니는 또봇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분노로 '디룩'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직접 '또봇 기지'에 신분을 위장한 채 잠입한다. 그때쯤 아크니와 도운과 세모의 관계가 다시 설명되는데 알고 보니 그 셋은 고등학생으로 참가했던 '로봇 경진대회'에서 1등,2등,3등을 차지하면서 친분을 쌓아왔던 것이다. 물론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로봇을 가지고도 차도운에게 어이없게 1등 자리를 내줘야만 했던 아크니는 그들과 친분을 쌓지는 않았다. 그저 그때부터 알게 되었고 미워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크니는 사회적으로 그녀 자신의 실력을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 분노가 그녀를 악당으로 만든 셈이다. 점점 더 교활해진 그녀는 결국 하나와 두리에게 엄마 행세를 하며 마음을 얻은 후 노골적으로 배신을 때리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다. 도시에서 부딪힐 때도 하나와 두리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불러주던 자장가를 무기로 삼아 또봇을 괴롭힌 다음 유유히 떠난다.
사실 9기 엄마의 자장가는 역대 시리즈 중 스토리가 가장 탄탄하고 어른들도 공감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1기부터 거의 빼놓지 않고 본 나와 아이들로써는 하나와 두리가 아크니에게 속아 넘어가고 마음을 빼앗기고 흔들리고 좌절하는 장면에 감정이 절로 이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난 이야기 마지막에 심지어 울었다. N,.N 그리고 솔직히 난 이쯤에서 아크니의 모델이 대통령 박 아무개와 너무 흡사하다고 느껴서 또봇 제작진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너무 비슷하지 않나?)
물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아크니가 참패하고 또봇이 승리한다. 죽은 걸로 추정되는 아크니가 사라졌어도 악당의 핵심인 아크니의 아버지는 새로운 악당을 계속 투입해 도시를 망가뜨리고 제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도시는 또봇이 지켜내리라는 메시지가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다.
반성할 줄 아는 전직 악당 권세모가 합류했고 또 나쁜 행동과 감정들을 제 스스로 판단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꿔 에너지를 보태는 캐릭터들이 자꾸자꾸 합류해 X, Y로 시작한 또봇은 Z에 C, W, R, D, K 등등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합체에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환골탈퇴를 반복한다. (부모들은 이 점에 대해 뜨악한다. 어떤 아빠는 '또봇이 A부터 Z까지 다 나올까 봐 겁난다'라고까지 이야기하니...부모 등골 휘게 만드는 악당은 대체 완구기업과 방송매체인가 자식들인가 ㅜ.,ㅠ)
그렇지만 나에게 또봇이 자꾸 시시해지는 건 여자 캐릭터의 가뭄 때문이다. 남자아이들과 그들의 관계는 점점 끈끈하고 다양해지는데 여자 캐릭터는 '주딩요' 혼자서 고군분투 중이다. 시리즈 내내 들고 나는 여자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1기부터 지금까지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또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에 합류해 있는 것은 하나와 두리의 친구 '딩요'와 경찰 '오순경' 뿐이어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
거기에 새로운 악당 대열에 끼어든 '안젤라'는 외모 콤플렉스에 돈에 환장한 요새 말하는 '김치녀'의 조건을 딱 갖추고 있는 여자 캐릭터로 등장부터 내 맘에 딱 거슬렸다.
여자 캐릭터가 늘 착하고 정의로워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자도 악당이 될 수 있다. 비열하고 집착하고 분노하고 배신하고 집요하게 나쁠 수 있다. 그런 여자 악당이 등장했다는 점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다. 문제는 악당이든 정의의 편이든 기본적으로 분량이 너무 적다는 것.
여자 악당을 다룰 때에는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자란 자고로 관계와 깊이에 집착하는 동물이다. (아닐 수도 있다. 살면서 겪어보니 딱 싫어하는 여자들도 있다)
남자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여자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건 생각보다 가벼운 일이 아닐 수 있음을...여자와 협력하고 동반자적 관계로 지낼 수 있는 비전을 변신로봇 애니에게서 기대한다면 과잉일까?
-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바이클론즈와 터닝메카드는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