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남자아이에게 친구란, 가족이란, 성장한다는 것이란...
사실 또봇은 시작에 불과했다. 또봇은 십대가 되기 직전의 아이들이 주 타깃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여서 캐릭터와 스토리전개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도 명확하고 싸워야 할 대상도 명확하다. 악당은 그냥 악당일 뿐...커가는 아이들은 점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비슷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원했다. 그게 바로 터닝메카드가 아닐까.
2014년 어느 날이었다. 주말부부를 막 시작한 나는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아빠를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게 해주려고 아이 아빠의 직장근처인 인천 송도의 대형마트에서 퇴근시간에 맞춰 아이아빠와 만나기로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장난감 코너로 전력질주했고 특히 로보트와 무기, 각종 조종가능한 장난감들이 가득한 남자아이 전용코너에 가서 장난감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이 아빠도 합류해 우리 집 세 남자는 눈을 반짝이며 사지도 않을 장난감에 탐닉해서 나는 한없이 지쳐가고 있을 때...큰 아이 정우가 한 장난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아빠 저 이거 사주시면 안돼요? 크리스마스 선물 안주셔도 되는데...저 이거 꼭 갖고 싶어요."
작은 미니 자동차 형태를 한 그 플라스틱 장난감은 터닝메카드 '에반'이었고 당시에 1만원을 살짝 웃도는 상식적인 가격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마트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장난감을 사주기로 결정했다. 동생 재형이는 형 덕분에 터닝메카드 '타이탄'을 얻었다.
그리고 몇 달 뒤...우리 부부는 모바일 SNS 쇼핑을 하다가 기절할 뻔 했다. 1만원대에 주고 샀던 그 장난감 터닝메카드 '에반'이 적게는 4만원에서부터 많게는 7~8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우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터닝메카드에 대한 우리 가족의 관심은 더욱 더 높아졌다.
2014년 겨울에 1만원대에 주고 샀던 그 장난감이 2015년 봄에는 구할 수 없는 희귀 장난감이 되었고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 '터닝메카드가 떴다'는 소식은 엄마들 사이에서 빅뉴스감이어서 1시간내에 다시 품절되곤 했다. 그 1시간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워낙 구하기 어려운 장난감이라 동묘완구종합시장에서는 2만원~3만원에서 암거래하듯 팔리는 장난감이 바로 터닝메카드였다. 터닝메카드 제작회사인 (주)손오공은 또봇시리즈 제작회사인 영실업을 따돌리고 완구업계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해외수출길도 열려 어마어마한 이익을 봤다는 뉴스도 화제가 되었다.
( 관련기사 참조: http://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66760)
2015년 2월부터 KBS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를 우리 가족은 좀 늦게 케이블에서 만났다. 미니자동차가 카드와 만나 생명체로 변신하는데 그걸 '메카니멀'이라 부른다. 이 메카니멀은 블루랜드라는 우주의 다른 차원에서 사는데 어쩌다가 지구에까지 오게 되었고 주인공 남자아이 '찬'은 우연히 '에반'과 만나 배틀을 시작하게 된다.
터닝메카드에는 배틀을 펼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찬, 반다인, 공주희, 천재인, 기운찬, 엘토포는 지구인이고 이소벨, 리안, 다비, 다나, 젤로시안은 블루랜드에서 왔다. 이들은 지구와 블루랜드를 오가며 배틀을 펼치고 에반, 타나토스, 타이탄, 미리내, 나백작, 타돌 등 39개 정도의 다양한 메카니멀들이 등장해 각기 다른 이유와 상황으로 갈등하고 화해하고 화합하며 배틀을 펼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처음 터닝메카드를 봤을 때 적잖이 놀랐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기술이 이렇게나 진보했단 말인가. 가족과 우정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기존 메이드인코리아 애니메이션들과 사뭇 달랐고 우주의 다른 차원이라는 공간설정(그냥 다른 별도 아니다, 헐~)도 친숙한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머리와 어깨를 달리는 귀여운 사이즈의 미니 자동차와 대화하고 심지어 변신해 배틀을 펼치는 역동성은 충분히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주인공 찬의 아버지가 실종상태이고 그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더니 급기야 (스타워즈와 같은 급의 반전으로) 계속 찬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메카니멀을 속이고 세뇌시키고 괴롭히던 악당 '엘토포'가 찬의 아버지임이 밝혀지기에 이른다. 메카니멀을 발명한 아주 뛰어난 과학자였던 찬의 아버지는 '블랙미러'라는 절대악에 의해 블루랜드로 끌려와 메카니멀들을 생산했고 블랙미러에 저항하다 세뇌당해 절대악당으로 변한 것이다. 찬은 절대악당이 되어 자신과 가족, 우정, 사랑 같은 선한 가치를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아버지를 상대로 배틀을 펼친다. 세뇌를 풀고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쯤에서 블랙미러라는 절대악이 우리나라 대기업 혹은 성과주의와 성장의 논리에 중독된 모든 기업들의 이미지로 연상되었고 그런 기업에서 시키는대로 일하다 일중독에 빠지거나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어가 가정을 등한시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어쩌면 대다수일지도 모르는 평범한 아빠들의 이미지와 엘토포가 겹쳐 보였다.
다시 터닝메카드로 돌아가서 결과적으로 찬은 아버지를 이기고 세뇌를 풀어 되찾는다. 자신이 찬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 엘토포는 지구로 돌아오지만 자신이 만든 메카니멀이 블랙미러에 의해 조종당할 경우 우주의 평화를 깰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위험하기에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블루랜드로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감춘 채 매우 어색하게 가족행세를 한다. 그러나 선택받은 존재로 암시되는 '찬'은 이제 겨우 돌아온 아버지에게 "엄마를 부탁해요, 저에게 맡겨주세요."라며 가족을 떠나 블루랜드로 긴 여정을 시작한다.
내가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가족을 지키는 건 아버지가 할 일이고 우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건 이제 막 자라나는 십대아이인 것이다. 세상을 유지하는 질서를 지키고 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을 물리치는 존재는 기존 세대가 아니라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혔기에 나의 감동은 가볍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떠나는 조그만 아이를 붙잡지 않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를 보며 감동이 감탄으로 이어졌다.아이의 운명대로 능력대로 모든 것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지켜보는 자세, 어쩌면 같이 싸우거나 대신 싸워주는 것보다 더 힘들 그 일이 사실 부모가 자식을 성장시키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이자 미션일 수도 있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원하는 마음 아닐까?
그렇게 블루랜드로 떠난 찬은 적이었던(자신이 지구인임을 모르는) 반다인을 지구로 돌려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친구들이 세뇌당하고 단짝 메카니멀이었던 에반조차 아니 자신과 같이 트레이닝과 배틀을 펼쳤던 그 모든 메카티멀들도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점보 메카니멀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인 시즌2를 맞게 된다. 과연 모든 걸 잃은 찬은 어떻게 다시 기운을 내고 친구들과 메카니멀을 되찾게 될까?
(점보 메카니멀은 또 얼마나 비쌀 것인가!! ㅠ.,ㅠ)
십대 아이들에게 친구란, 가족이란, 성장이란 무엇일까? 이미 다 지나온 어른들로서는 돌이켜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의 상처와 배반과 고통을 아이들이 잘 감당해낼 수 있을까?
오늘도 이런 걱정들로 하루를 헤매고 있는 나는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키우는 페미니스트 엄마다.
p.s 역시 이 터닝메카드 또한 여자 캐릭터들의 다양성이 없다는 점은 아쉬워 죽겠다. 이소벨은 도도한 캐릭터, 공주찬은 상냥하고 호기심 많은 여성스러운 캐릭터, 응석꾸러기에 울보지만 잠재능력은 암시되는 다나가
여자 캐릭터의 전부이다. 메카니멀은 성별이 모호해서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소벨의 전담? 메카니멀 미리내, 가 그나마 여성적인 성향을 보이지만...참... 의미없다.
터닝메카드 공식홈페이지 http://smart.kbs.co.kr/tv/enter/mec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