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데이 엣 어 타임의 리디아, 페넬로페, 엘레나
원 데이 엣 어 타임(One day at a time)
TV 드라마 / 미국 / Netflix
시트콤
얼마 전 <모아나>를 볼 때 날 가장 많이 울렸던 장면은 모아나의 할머니가, 난 괜찮으니 바다로 나가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할머니의 가오리 문신이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모아나를 이끌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난 재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녀는 빌려줬던 돈을 받으러 갔다가 폭행을 당했던 탓에 그 후유증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그녀와 이야기할 때는 늘 큰 목소리로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첫 손자였던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줬다. 정말 맨발로 뛰어나와 날 반겨주시는 그런 분이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족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는 늘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때론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답답하게 하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가족이니까’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이야기는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너무 판타지 같은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 내가, 3세대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시트콤을 추천하려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에 순종하는 혹은 반항하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패턴을 담은 이야기를 대차게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정말 추천을 하려고 말이다.
표면적으로 완전히 대놓고 드러나는 가부장적 존재가 등장하지 않고 할머니, 엄마, 딸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일단 나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긴 했지만, 엄마의 희생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또한 그것이 강요되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이 시트콤은 날 정말 많이 웃기고 또 울렸는데, 일단 그 첫 번째 이유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와 그들의 조화
리디아(Lydia) - 아부에리따(Abuelita) *스페인어로 할머니
리디아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고 쿠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통과 가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청 갑갑한 보수적인 할머니 같지만 리디아는, 손녀, 딸과 ‘성차별’(Sexism)을 이야기하면서 남자들을 대할 때 남자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딸의 말에 왜 그래야 해? 남자들은 호호호 웃으면서 넘어오게 만들어서 컨트롤하면 되는 존재들이야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좋아하고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남성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일 지를 걱정하며 잘 때도 풀메이크업으로 자는 모습에선 왜 저렇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쓸까... 라고 싶다가도 하느님은 대단해, 날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었잖아 라고 말하는 건 보면 이 사람이 페미니스트인지 안티 페미니스트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거기다 손자인 알렉스를 파삐또(papito)라고 부르며 아껴주는 모습에서 분명히 그녀의 남아선호 사상을 볼 수 있고 포르노 영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에선 남녀를 대하는 차별적인 시선을 볼 수 있고 심리상담(therapy)을 받으러 가는 딸에게 그건 로꼬(Loco, 미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반대하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건, 내가 널 위해서 뭘 포기했는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손자들 앞에서 난 너네 엄마의 엄마니까, 너네 엄마보다 거짓말을 더 할 수 있어!라는 당당함 때문이다.
페넬로페(Penelope)
리디아의 딸이자 엘레나, 알렉스의 엄마인 페넬로페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전 군인이자 현 간호사로, 가톨릭 집안에서 처음으로 이혼 경력을 가지게 될, 현재는 별거 중인 싱글맘이다. 같은 군인이었지만 PTSD로 인해 약과 술에 의지하게 되어버린 남편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할 만큼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맨스플레인을 남발하는 직장 동료에게 맞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줄 알고, 그 남자 동료보다 자신이 임금을 더 받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그런 사람이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나 미쳤나 봐라고 후회하긴 하지만)
극이 진행되는데 기둥이 되는 스토리인 ‘퀸 세스’(Quinces 혹은 Quinceanera,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중 하나로 여자 아이가 15살이 되면 하는 성대한 생일 파티)를 두고 극명하게 대립하는 리디아와 엘레나 사이에서 조율을 이끌어내는 집안의 중심이지만 남편의 부재에 힘들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공감도 되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모두 스스로 해결하려고 끙끙거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리디아가 싫어하긴 하지만, PTSD를 이겨내기 위해 약도 먹고 전역한 여군들이 모여있는 그룹 심리 상담에도 참가하고, 엘레나가 커밍 아웃을 한 후 딸 앞에선 괜찮아라고 했지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신이 꿈꿨던 딸과의 인생을 어떻게 포기해야 할지 모를 때도 레즈비언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게 된달까, 그런 힘이 있는 캐릭터이다.
엘레나(Elena)
리디아의 손녀, 페넬로페의 큰 딸, 15살을 앞두고 있는 엘레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 열정적이며, 퀸세스는 딸아이를 좋게 말해서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기 위해(사실은 소, 염소 등 물물교환의 대상으로서 잘 팔기 위해) 행해온 여성혐오적 행사라고 거부하는,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고, 불합리하고 소수자 배제적인 것을 극명하게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이런 대중적인 쇼에 이렇게 어린 페미니스트가 과연 등장한 적이 있었나? 아마도 처음이지 않나 싶은데 엘레나의 이야기나 주장은 어린애가 하는 치기 어린 말로 치부되지 않는다 . 그녀의 말이 논리적이고 명확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고 자신이 납득된다면 쿨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그 부분을 말이다.
커밍 아웃 전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도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두려움 없이 덤벼든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자(의도치 않은 부분도 있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의 15살은 어땠었나 라는 반성과 후회를 하면서 이 15살 소녀를 존경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캐릭터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배열만 했다면 분명 덜 재미있었을 텐데 이 시트콤은 너무나도 개성이 뚜렷한 서로 다른 여성 캐릭터들의 조합이 굉장히 좋다. 서로 부딪히지만 결국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이 억지스럽지 않고 촘촘히 잘 맞아떨어진다.
세대를 걸쳐 변화된 여성의 모습
그리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며 풀메이크업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미덕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여성,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남자보다 더 강한 여성이 되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여성, 어떤 모습이든 난 나이고 그것에 만족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이 세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해 왔고 변화해 가고 있는가를 한 화면에 담아서 보여주는데, 보는 이로서는 약간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성의 역사 단면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지금의 페미니즘과 달라서 구식의, 오래된, 철 지난 혹은 잘못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도 분명 그때 그 시절의 페미니스트와 여성에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 과거로 갈 것도 없이 지금도, 리디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잠재적 페미니스트인 여성들과 엘레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재미있는 삶들을 만들어 나갈까 라는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힌트를 얻을 수도 있는 그런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 엄마의 이름에 가려졌던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트콤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성의 이야기가 다른 이름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그 여성의 이야기로도 빛난다는 점이었다. 극 중에서 알렉스의 과제로, 리디아의 쿠바 생활과 미국으로의 이민 이야기가 등장하고 페넬로페도 몰랐던 리디아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며 울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에게도 나의 외할머니, 엄마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가 분명 있었을 텐데 그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녀에겐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할머니와 엄마가 아닌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졌고, 그녀가 너무나 사랑해 주었던 귀여운 큰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녀와 마주 앉아 이제 그걸 물어볼 수 없다는 게 참 슬펐다.
시트콤 이야기를 하다가 슬퍼진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원 데이 엣 어 타임’은 나에게 다시 한번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성에 대해서 일깨워줬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도. 나의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결국 알 수 없겠지만, 그녀를 기리며 나만의 상상으로 이야기를 쌓아 올려 보려고 한다. 그녀가 만족해할 만한 멋진 이야기로 말이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이 시트콤은 정말 웃기고 재미있는 시트콤이다. 편하게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