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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7. 2017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아나

#2 모아나의 모아나

영화 ‘모아나’(Moana)는, 디즈니에서 만든 56번째 애니메이션 필름으로 마투누이 섬에 살고 있는 부족과 그 부족의 족장의 딸이자 미래 족장인 모아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작부터 귀여운 아기 모아나의 종종걸음과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는 매혹하는 모아나는, 영화 내내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이렇게까지 여성의 성장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언제 또 있었나 싶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뛰는 가슴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아나는 족장의 하나뿐인 딸로 태어나, 여성 캐릭터로서는 드물게, 부족을 이끄는 족장, 즉 리더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일단, 앞서서 이야기가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한 것과 상반되지만, 개인적으로 좀 불편하게 느껴졌던 부분부터 먼저 짚고 가겠다. 


모아나는 왜 족장의 딸, 족장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설정되어야만 했을까?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권력 세습’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 말이다. ‘선택받은 자’, 바다를 향해 항해를 할 수 있고 ‘마우이’를 찾아서 결과적으로 ‘테 피티’의 심장을 되돌려줄 그 사람은, 항해가의 피를 타고난 그 부족의 누구였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걸 지울 수가 없었다. 


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모아나는 족장의 정체성보다 모험가이자 항해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며, 이어받은 권력을 그냥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손에 쥐어지는 권력의 자리를 오히려 걷어차고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고 쟁취하기 때문에 족장의 딸이라는 것이 그다지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결말 및 스포일러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유의 바랍니다]


마지막에 족장이 되는 자가 쌓아 올리는 돌도, 모아나는 돌이 아닌 소라 껍데기를 올리는데 항해가 부족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관습과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런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족장이라는 운명이라는 걸 설정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캐릭터 모아나의 매력

그럼 본격적으로 모아나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무엇부터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긴 하는데 일단 제일 좋았던 점은, 모아나라는 캐릭터 자체였다. 그리고 특히 모아나가 계속해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마투누이 섬에서 온 모아나다’라는 대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 상의 전개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누구인지 잊지 않고, 다른 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극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아이 엠 모아나’(I’m Moana)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어려움이 극에 달했는데 다른 이를 부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부른다는 것, 그게 소름 돋을 정도로 정말 멋있었다. 내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엄청 많이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노래에서까지 자신의 이름을 외쳤던 적은 없지 않았던가? 


여성에게 있어서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누군가의 딸, 누나, 여동생, 여자 친구, 부인, 엄마 등으로 불려지면서 우리의 이름은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 정도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작업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게 정말 좋았다. 


그리고 모아나는 굉장히 주체적인 캐릭터로 거의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한다. 심지어 자신의 주장을 다른 이에게 관철시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인 데미갓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마우이를 설득하고 달래고 다독이면서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는 여정을 떠나고,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우이에게 항해술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들의 여정을 가로막는 벽(악역들)이 등장했을 때도 가만히 있거나 마우이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낸다. 대단한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을 보호해 줄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말 전사도 이렇게 멋있는 전사가 없다. 


영화가 보여주는 남녀의 차이, 흥미로운 발견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 내에서 발견한 남녀의 차이였다. 사실 마우이는 딱히 남녀라고 정해진 젠더가 없는 젠더 뉴추럴(Gender Neutral)이라고 소개되긴 하지만, 외향적인 부분에서 남성에 가깝다고 볼 때,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테 피티의 심장을 뺏은 것, 즉 문제를 일으킨 것은 남성인 마우이이고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는 것, 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성인 모아나라는 점이다. 

그리고 부족을 마투누이 섬에 머물게 하고 배가 있는 곳을 막아버린 것은 그때의 족장인 남성이었고 부족에게 다시 항해가라는 정체성을 되찾아 주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도록 인도해 주는 것은 새로운 족장인 여성이라는 점이, 나로서는 굉장히 재미있으면서 뭔가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연대의 감동

마지막으로, 영화 모아나의 감동적이었던 점은 여성의 연대를 그린 방식이었다. 모아나는 대부분의 선택을 스스로 하지만 제일 처음 바다로 나가고자 할 때 타인의 도움을 받는데 그게 자신의 할머니였다. ‘난 괜찮으니 가라. 난 언제나 너의 옆에 있을 것이다.’ 모아나가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을 찾아 떠날 수 있게 해 준 것은, 족장인 아버지가 아니라 아기였던 모아나에게 전설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모아나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할머니였고 그녀는 모아나가 가장 힘들 때 다시 나타나 또 한 번 모아나를 격려하여 모아나가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데미갓인 마우이를 쓰러뜨린 유일한 존재, ‘테 카’를 무찌른 건, 사실 무찌른 것이 아니라 테 카라는 분노의 존재가 되어버린 테 피티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었지만, 모아나였고 그 싸움에서 모아나가 이길 수 있었던 것 엄청난 슈퍼 파워나 무기로 테 카를 제압한 것이 아니라 테 카의 본모습을 알아봐 주고 그 아픔을 이해한 연대였다. 모아나가 본모습을 찾은 테 피티의 이마에 경배의 키스를 할 때, 정말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원래 싸움이나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이라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모아나가 테 피티를 알아본 건 아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모아나도 적들과 싸울 때는 싸운다. 모아나는 단지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 연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이 부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나와 영화를 같이 본 이는, 지금 모아나를 보는 어린 여자 아이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사랑을 기다리는 공주가 아닌 모아나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모험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그들이 꿈꾸는 그 모험의 꿈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그 날이 난 너무나 기대된다. 그리고 난 그 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탄탄한 길을 열심히 만들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 디즈니가 앞으로 자신들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보여줄 페미니즘과 여성들을 위한 동기부여(empowering)가 기대된다. 


이 글은 수정된 버전으로 '매거진일일' http://il-il.goham20.com/50041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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