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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4. 2017

센트럴파크에서 발견한 여성의 공간

#1 센트럴파크 추천 장소 - 여성들의 호수

위치: New York, NY 10024

         가로 5th 애비뉴와 8th 애비뉴, 세로 59th 스트리트부터 110st까지의 면적을 차지.

방문 가능시간: 월-일, 아침 6시 ~ 새벽 1시

홈페이지: www.centralparknyc.org


뉴욕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갔던 곳이 센트럴파크(Central Park)다. 머물렀던 숙소가 가깝기도 했고, 왠지 아침 산책을 센트럴파크에서 해줘야 좀 뉴요커 같은 기분이 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뉴욕의 얼굴이기도 하고 심장이기도 한 이 명소는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등장했던 터라, 맨해튼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장소다. 공원 잔디밭에 누워 뉴요커처럼 책을 읽고 싶은 그런 로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동네 공원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냥 무작정 갔다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는데, 센트럴파크의 면적이 상당히 넓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3.41㎢ 즉 백만 평. 백만 평이라니? 백 평도 감이 안 잡히는 소시민으로서는 대체 어느 정도인가 싶은데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 좀 큰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센트럴파크에 갈 때는 가기 전에 공원 지도를 살펴보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찜해두고 그 경로에 맞게 움직이는 게 좋다. 물론 그냥 돌아다니면서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포기할 순 없으니까, 시간을 넉넉히 잡고 기본 경로를 유지하되 주변을 천천히 보면서 핫도그도 사 먹고 잠시 잔디밭에 앉아 멍 때리기도 하는 그런 일정을 잡으면 좋지 않을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센트럴파크와 관련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공원에 가기 전에 센트럴파크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투어 중 하나를 신청했다. ‘미드 파크 웰컴 투어’(Mid-Park Welcome Tour)로, 77th 스트리트에서 시작해서 79th 스트리트에서 마무리되는 약 1시간가량이 소요되는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투어 가이드를 해주시는 분은 센트럴파크를 관리하는 비영리단체 ‘센트럴파크 보호협회’(Central Park Conservancy) 소속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 두 명이었다. 한 명이 투어를 주도해서 이끌고, 다른 한 명은 보조 역할을 하면서 투어 동안 뒤쳐지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주셨다. 투어 내내 설명도 잘 해주시고 센트럴파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미드 파크 웰컴 투어’는 센트럴파크의 역사를 듣고, 미드 파크의 주요한 장소들을 돌면서 그 장소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라던가 건축 및 조경 양식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의 귀를 사로잡은 내용은 ‘여성들의 호수’(Ladies’ pond)에 관한 이야기였다.


W77th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는 ‘여성들의 호수’는 사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그 자리에는 그냥 길이 있고 잔디밭과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잠시 센트럴파크의 역사를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센트럴파크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등의 도시 환경을 부러워하던,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던 상인들과 부유층들이 ‘우리도 끝내주게 멋있는 공원이 있어야겠어!’라고 주장하면서 추진된 공간이다. 1857년 공개적으로 공원 조경 디자인 콘텐스트를 열어 선정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는데,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조화를 잘 이루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가지고 온 무언가 혹은 만들어진 무언가도 그냥 공원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여성들의 호수’는 메인 호수 근처에 있는 작은 호수였다. 이 호수의 용도는,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그리 놀랍지는 않다고 해야 할지 좀 헷갈리는데, 여성들만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한다. 즉 ‘여성들이 남성들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 없이 자유롭게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맨해튼은 겨울이 되면 꽤나 차가운 칼바람이 불고 눈도 자주 오는 탓에 호수에 얼음이 얼어서 시민들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겨했었는데, 호수에서 남녀가 같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몇몇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스케이팅을 하면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쫓는다거나, 성추행을 하는 등 1929년 한 해에만 ‘괴롭힘’으로 경찰에 신고된 건수가 250건이 넘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그런 류의 인간들을 변하지 않나 보다. 


한편, ‘여성들만의 호수…’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 시대 퀴어 여성들의 모임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 상상되는데, 드레스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는 여성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스치는 손을 붙잡고 ‘괜찮으신가요?’ 물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여자들의 그런 스위트함이 드러나는 그런 장소이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호수는, 가뭄과 그로 인한 늪지화, 모기로 인한 질병 발생 등의 문제로(그리고 이용자 감소도 있었던 것 같다) 없애기로 결정되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여성들의 호수 근처에는 ‘여성들의 파빌리온’(Ladies Pavillion)이라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인 탓에 지금은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성들의 호수가 있었던 시절에는 여성들이 스케이팅을 준비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센트럴파크에 이처럼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넓디 넓은 공간 중 어느 한 곳에 여성들의 공간이 있었다는 거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여성들만의 자유로운 공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또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공간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니까 말이다.  


파란 하늘에 붉은 꽃들이 피어있었던 가을의 센트럴파크
주변의 건물과 공원이 조화로운 센트럴파크
하늘과 호수의 경계가 흐릿한 센트럴파크 메인호수


#여행팁

1. 센트럴파크의 공식 홈페이지는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유용한 정보를 얻기 좋다. 영어 공포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Visit’ 코너의 ‘Map’에서 지도는 다운로드하자. 조깅을 할 수 있는 러닝맵, 자전거 투어를 위한 바이크맵, 걸어서 다니는 사람을 위한 워킹맵이 구분되어 구비되어 있고 심지어 월별마다 그 달에 맞는 추천 코스가 나와있는 맵도 있다. 


2. 센트럴파크의 공식 투어는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며 사전 신청만 하면 참여할 수 있다. 요일마다 하는 투어가 다르니 미리 확인하고 참가하고 싶은 투어에 맞춰 공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으면, 투어가 끝나고 자유롭게 공원을 둘러보는 것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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