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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5. 2017

센트럴파크의 구원자

#2 센트럴파크의 여성-엘리자베스 바로우 로저스 

이전 이야기에서 소개했듯이 센트럴파크는 디자인 공모를 통해 디자인이 결정되었는데 그 공모에서 우승한 사람은 남성 두 명이었다. 그래서 센트럴파크를 이야기하면 항상 그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여성이 관련된 부분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공원에, 과연 여성의 참여가 없었을까? 무언가 있었을 거야! 라는 생각에 좀 조사를 해봤더니, 역시 있었다!! 엘리자베스 바로우 로저스(Elizabeth Barlow Rogers)라는 여성이.


1970년대 뉴욕시가 은행 파산 등의 이유로 어려운 상황일 때, 센트럴파크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어둡고 흉흉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공원을 제대로 돌보는 이들이 없었던 탓에 공원 내 건축물들은 낙서로 뒤덮였고, 곳곳이 낡고 훼손되었다. 호수에는 맥주 캔이 둥둥 떠다졌고, 잔디밭에는 잔디 대신 흙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등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때에 엘리자베스 바로우 로저스가 나섰다. 도시공원 전문가이자 센트럴파크 디자이너 중 한명인 페드릭 로 옴스테드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그녀는,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공원청소단체를 만들고 공원을 복구하기 위한 모금 마련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1979년 뉴욕 시장은 엘리자베스를 공원 관리자로 임명했고 그녀는 내가 참여했던 투어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곳이자, 공원을 관리하는 단체인 ‘센트럴파크 보호협회’를 창립하고 리더가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공원의 토질 상태, 나무들의 현황, 주변 교통상황 등을 파악하는 데만 3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그리고 ‘15년 복구 계획’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이 되었을 때 센트럴파크는 주민들과 외부인들이 즐겨 찾고, 보트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고, 자연의 로맨스를 담는 영화도 찍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어느 기사에서는 그녀를 “센트럴파크의 구원자”(Savior)라고 표현하고 있던데, 정말 그렇게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엘리자베스가 창립한 ‘센트럴파크 보호협회’는 연간 6천5백만 달러(약 760억 원)에 이르는 공원관리 비용 중 75%를 제공하는데, 전부 시민들과 단체들에서 기부한 돈이라는 거다. 그런 체계를 만든 사람이니, 지금의 센트럴파크가 있는 것이 그녀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공원을 열심히 수리하고, 청소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조금만 자세히 바라보면 알아볼 수 있는 ‘센트럴파크 보호협회’라는 글자가 적힌 옷 혹은 모자를 입고 쓰고 있다는 것! 뉴요커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거기에다 그 공원을 내가 관리하고 만들고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자베스의 노력과 헌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센트럴파크에는, 역사의 기록에선 종종 빼먹어버리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고 여성들의 노력과 능력으로 만들어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센트럴파크에 가게 된다면 우아하게, 어떤 이들이 “된장녀”라며 그렇게나 치를 떠는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여성들의 파빌리온’에 앉아, 그 옛날 ‘여성들의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여성들을 생각해보며 상상을 나래를 펼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길바닥에도 센트럴파크와 하늘이 반짝이고 있었다 
파란 도화지에 뿌려진 꽃
가을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공원 내부
풍경, 그  풍경을 이루는 모든 존재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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