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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26. 2017

브로드웨이에서 만난 페미니즘 (1)

#3 여여 케미의 끝판왕 뮤지컬 [위키드]

뉴욕 하면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하면 뉴욕.

마치 수학공식처럼 알려져 있는 저 말 때문에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왠지 뉴욕 여행에는 ‘뮤지컬 보기’ 일정을 꼭 넣어야 할 것 같은 압박 아닌 압박을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고 있었다. 원래 난 많으면 1년에 한두 번 뮤지컬을 보는 정도라, 뮤지컬에 대한 조예가 깊다거나 엄청난 애정이 있는 게 아니라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싶긴 한데 뭘 봐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위키드>(wicked)였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작품인 데다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니까 실패 확률이 낮지 않을까 싶어 100달러가 넘는 과감하게 티켓을 구매했다.


위키드의 무대는 그 무대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어른 여성에게 어울리는 건 칵테일이지 싶어서 '위키드 스페셜 칵테일' 구매

공연을 보러 간 건 목요일 저녁 8시,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명성에 걸맞게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다.

<위키드>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야기하자면, 뮤지컬은 오즈인들이 서쪽의 위키드 마법사인 알파바가 죽었다고 기뻐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착한 마법사 글린다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알파바의 죽음 여부를 다시 확인하면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근데 너희 둘이 친구였다며?’라고. 글린다가 ‘그랬어, 하지만 그때 알파바는 달랐어…’라고 말하며 극은 알파바와 글린다가 마법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고, 둘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슈렉 같은 녹색 피부를 지닌 알파바는 외모로 인해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동생 네사로즈를 돌보는 역할에만 한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글린다는 금발의 아름다운 미모로 어딜 가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 그래서 살아가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는 전형적인 공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학교에서 만나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다가, 소울메이트가 되고 함께 성장해 간다는 이 이야기에는 여성들이 즐길만한 포인트가 꽤 많았다.


실제로 2003년 처음으로 상연되어 10년이 넘게 공연되고 있는 이 스테디셀링(steady selling) 뮤지컬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페미니즘 뮤지컬’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관람 포인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다.


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위키드>의 주인공인 알파바와 글린다는 우리가 종종 보곤 하는,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남성 캐릭터에 종속되어 버리거나 의존해 버리는 여성 캐릭터와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하고, 혹은 서로 도움을 주면서 성장해 간다. 물론 전형적인 여-남-여의 삼각관계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삼각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 때문에 서로의 삶을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찝찝한 감정 없이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설 수 있다.


② 브로맨스는 이제 가라

알파바와 글린다의 관계는 로맨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깊은 애증(!!)의 관계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 둘의 커플링을 응원하는 팬들이 굉장히 많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게 되고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이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③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이 노래, Defying Gravity

<위키드>에서 가장 유명한 이 노래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는 정말 중독성이 강한 곡이라 한번 듣고 나면 계속 ‘그뤠~비~티’하면서 흥얼거리게 된다. 극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둘의 관계가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노래라 더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노래의 주요 포인트는 가사와 주인공들의 대사로 그동안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었던, 그리고 원치 않았던 역할과 모습에서 벗어나 ‘나를 찾겠다’는 여성의 자아실현과 ‘우리 함께 하자’고 서로를 북돋아 주는 우정(사랑)을 보여주는 이 노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그걸 끓어오르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왕국>(The frozen)의 대표곡 '렛 잇 고'(Let it go)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노래를 불렀으며 주인공 엘사 목소리를 연기한 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은 <위키드> 오리지널 캐스트로 <위키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도 대표적인 알파바라는 것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되었어(Something has changed within me) 

무언가가 예전과 같지 않아(Something is not the same) 

난 다른 사람의 계획에 의해 정해진 역할에 따라 움직여 왔었지(I'm through with playing by the rules, Of someone else's game) 

이제 다시 생각하기엔 늦었어(Too late for second-guessing) 

이제 다시 잠들기엔 늦었어(Too late to go back to sleep) 

나의 본능을 믿을 때야(It's time to trust my instincts) 

눈을 감고 뛰어오르자!(Close my eyes and leap!) 

이제 도전할 때야(It's time to try) 

중력을 뛰어넘고(Defying gravity) 

도전을 할 거야(I think I'll try) 

중력을 뛰어넘을 거야(Defying gravity)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끌어내릴 수 없어!(And you can't pull me down!)

우리가 이기지 못할 건 없어(There's no fight we cannot win) 

너와 나 둘이서(Just you and I) 

중력을 뛰어넘어(Defying gravity) 

너와 나 함께(With you and I) 

중력을 뛰어넘는 거야(Defying gravity)


④ 마법의 세계,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무대

<위키드>는 마법의 세계라는 무대 배경에 걸맞은 화려한 연출이 이루어진다. 동일한 하나의 무대에서 계속 극이 이어지기 때문에 배경이나 느낌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뮤지컬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변화되는 무대 세트와 웅장한 오케스트라 그리고 아름다운 드레스와 의상들로 쉬지 않고, 우리의 오감과 감정을 즐겁게 해준다.


<위키드>로 큰 만족을 얻은 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으로 뮤지컬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뮤지컬들을 찾을 수 있었다. - 그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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