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사인, 그 시절 유곽에 조선 여성은 없었다
개항 이후 조선사회에 등장한 '유곽' 집결지는 계속 확대되어 인천, 부산, 군산, 원주 등 식민지 도시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식민지배로 시작된 조선의 근대화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착취를 내재화하는 과정이었다.
#미스터 션샤인 7회 에피소드
호사스런 일본 요릿집에서 젊은 일본 군인이 술을 마시고 있다. 갑자기 돈이 생긴 그는 호기롭게 여러 명의 게이샤를 불러들였다. 그 중 자기 앞에서 술을 따르는 아름다운 게이샤에게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올해는 콩을 얼마나 먹을 거냐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한 백개?” 라고 대답하자 일본 군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너 조선계집이구나” 게이샤로 위장한 여성의병의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이었다.
구한말 조선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이다. 술에 취한 일본 군인이 어떻게 단박에 조선 여인의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가 신박하게 촉이 좋아서? 아님 그녀의 일본어가 본토 발음이 아니라서? 여기에는 개항기 일본식 유곽에는 조선 여성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힌트가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성 '화월루'는 실제 1890년에 개업한 일본인 요리옥의 이름이다. 그 당시 일본인 고관대작이 일본인 게이샤의 서비스를 받는 특별요릿집이니 일본인인 척하는 조선 여성은 의심쩍어 보일 수밖에. 미스터 션샤인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한 연도로 특정하기에 혼동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그 장면에는 유곽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깔려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 조선사회에 성매매가 존재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당시 조선인 여성들은 성매매를 거의 하지 않았다. 창기, 들병이, 주모 등 하층계급의 여성들은 숙소나 음식 등에 대한 대가로 서민 남성에게 간헐적으로 성을 판매했을 뿐이고, 첩, 관기 등은 가부장제 사회의 축첩제의 연장이었다. 반면, 조선인 남성은 ‘신문물’인 일본식 유곽에 들락거리며 성병을 옮기고 가산을 탕진하면서 조선사회에 성매매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과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일본군대가 조선사회에 주둔하면서 일본 거류민의 규모도 급격하게 늘어난다. 개항지를 중심으로 일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 업소인 대좌부(貸座敷), 석대업, 대합, 특별요리점도 함께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대좌부는 성매매를 위한 공간과 여성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이며, 특별요릿집은 요리를 팔며 성매매를 하는 곳이다. 당시 일본에서 성행했던 전업형 성매매 업소 ‘유곽 遊廓’(노는 집)의 한 형태들이다. 성매매 여성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일본식 유곽은 개항 이전 조선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곽은 개항지였던 부산과 인천, 원산을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일본에서 건너온 성매매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전국적으로 조선인 성매매 여성과 조선인 남성을 상대로 하는 유곽이 등장한 것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부터이다.
일본식 유곽에서 비롯된 성매매가 사회문제가 되자 일본 정부는 대좌부업이나 특별요릿점들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3. 여러 개의 유곽이 한 곳에 모인 지역, 즉 집결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집결지가 생긴 곳은 부산이다. 1902년 7월 24일 부산 부평정 1정목에 요리를 팔며 성매매를 하는 특별요릿집 안락정이 설립된 후, 이어 제일루와 국복루, 국수루 등에 요리점 7집이 들어섰으며 성매매 여성은 모두 280여 명에 달했다. 아미산하(峨媚山下)유곽지역으로 불렸던 이 곳(현 부산시 중구 부평동)은 1907년 8월 인근의 미도리마치(綠町) 지역(현 완월동)으로 이전했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4년에는 서울 남산 부근인 쌍림동(현 서울시 중구 묵정동)에 신마치(新町) 유곽이 등장하였다. (유곽의 역사, 2007, 홍성철)
이 시기 등장한 유곽 집결지는 계속 확대되어 인천, 부산, 군산, 원주 등 식민지 도시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식민지배로 시작된 조선의 근대화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착취를 내재화하는 과정이었다.
(덧) 대중매체에서 조선 기생과 일본 게이샤의 이미지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급 성매매 업소인 ‘요정’에 대한 재현이 대표적이다. 조선사회에 성매매가 존재하였다는 근거로 기생 제도를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 이미 공창제도가 시행한 일본의 게이샤는 전업으로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이었고, 조선 기생은 간헐적으로 성매매를 하더라도 본업은 기예인이었다.
용어설명: <출처> 유곽의 역사, 2007, 페이퍼로드, 홍성철 지음
☛ 대좌부(貸座敷)
일본의 독특한 성매매 방식으로, 남녀가 은밀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방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냥 방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돈을 받고 빌려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좌부업자는 성매매 여성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오늘날의 `포주’라 할 수 있다.
☛ 대합
‘마치아이'로 불리는 대합은 기차역 대합실처럼 잠시 걸터앉아 얘기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장소를 일컫지만, 실제로는 대좌부업과 같은 윤락업소로 남녀가 밀회할 방을 빌려주고, 술과 음식을 제공하였다.
☛ 대좌부영업 및 예ㆍ창기취체규칙(貸座敷營業規則, 藝ㆍ娼妓取締規則)
1881년 11월 일본 정부는 부산과 원산 일본인 거류민들의 대좌부업자 및 예기와 창기 영업 등을 관리하기 위한 법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