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모르겠고 일단, 사파
베트남 북서부 고산지대의 사파는 '베트남의 스위스'라 불린다
여행 좀 다닌다는 사람들한테 사파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따뜻한 베트남의 중남부에 있다가 하노이를 거쳐 사파까지 간 것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1월의 사파는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산지역의 겨울답게 추웠고 짙은 안개가 구름처럼 도시를 감쌌다. 사파에서의 일주일은 매일 안개가 걷히길 바랐지만, 어느덧 안개 어린 사파에 천천히 스며들던 날이었다. 안개가 말끔히 개인 날, 한 번도 못 가본 스위스는 모르겠고 사파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파 SapaThị xã Sa Pa는 베트남 서북부, 중국과 국경을 접한 라오까이 Lào Cai Province 주에 있는 고산지대의 마을이다. 해발 1,650m로 드물지만 베트남에서 거의 유일하게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사파 타운은 프랑스 식민시대애 군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된 도심으로 주변 12개의 소수민족에게는 유일한 도시이자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이다.
사파는 하노이에서 약 370km 떨어져 있어 차량은 5~6시간, 기차로는 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노이-사파 구간은 편하게 누워서 갈 수 있어 '슬리핑버스'로 통칭되는 장거리 버스가 많지만, 여행자들은 기차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노이 중앙역에서 밤 9-10시 사이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새벽 6시경 라오까이역에서 내려서 다시 차량으로 40분 정도 사파타운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행자들이 버스보다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리는 기차를 선택하는 이유는 야간열차의 낭만 때문이다. 직접 타보니 엔틱한 인테리어로 꾸민 열차 객실은 오래되었지만 제법 아늑했고, 이층침대에 누워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듣다 잠이 드는 기분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하노이로 돌아갈 때는 점심때쯤 슬리핑 버스를 탔다. 다리를 쭉 펴면 발 끝이 살짝 닿을 듯한 캐빈버스 좌석에 누워 창문 밖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버스여행은 편안했다. 평소 부러워하던 항공기 비즈니스 좌석을 탄 기분이었다.
사파타운 주변은 첩첩산중이다. 산은 익숙하지만 구름과 산을 배경으로 유럽식 건축물과 소수민족의 문양과 어우러진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트래킹과 소수민족 마을은 사파여행의 핵심 키워드이다. 트래킹은 사파타운에서 시작해 타논마을까지 걷는 1일 코스와 소수민족마을에서 숙박하며 마을 주변을 걷는 2-3일 코스가 있다. 1일 트래킹 코스는 계단식 논과 계곡, 소수민족마을을 지나며 걷게 되고 숙박을 할 경우에는 숙소 주인이 직접 코스를 추천하기도 한다. 사파의 소수민족 여성들은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트래킹 가이드로 일하고, 공예품을 만들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가족과 마을을 부양하고 있다.
겨울철 사파는 안개와 잦은 비 때문에 트래킹 하기 좋지는 않다. 그래도 장화를 신고 도전해 본 장화 트래킹은 색다른 여행의 추억이었다. 단둘이 수다를 떨며 진창길을 함께 걸었던 나의 가이드는 5월 이후에 꼭 다시 오라고 했다. 5월부터 9월까지가 사파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다. 트래킹도 좋고 그냥 전망 좋은 카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충분할 아름다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