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끼리 떠난 쿠바여행 이야기
아바나의 밤이 미처 끝나지 않은 이른 새벽,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가 물었다.
“Do you havemuch Vitamin-R in Cuba?” 비타민 R이라니? 쿠바에는 그런 비타민도 있나, 그는 의아해하는 여행자의 눈빛을 마주하며 웃었다. “Rum, Vitamin-R” 아하, 우리가 여행 내내 무척이나 애정하던 럼주를 말하는구나. 여자들의 첫번째 쿠바여행은 그렇게 아쉬운 듯한 웃음으로 끝나고 있었다.
쿠바를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쿠바의 상징은 올드카와 시가, 살사, 체 게바라이다. 하지만 쿠바를 다녀온 여행자라면 여기에 주저없이 ‘럼주 Havana Club’을추가할 것이다. 아바나클럽 Havana Club은 쿠바를 대표하는 럼 브랜드이다. 럼주는 순도 높은 사탕수수 즙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로 무색이거나 빛깔이 연한 것을 화이트럼, 진한 것을 다크 럼이라고 한다. 럼주는 훼밍웨이가 즐겨마셨다는 여름 칵테일 모히또 Mojito, 달콤한 얼음 슬리시에 럼이 들어간 다채로운 빛깔의 다이키리Daiquiri 등 모든 쿠바칵테일에 아낌없이 들어간다.
오래전부터 쿠바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사탕수수이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한 쿠바에서 설탕과 럼주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식민지 시절 스페인에서 이주한 이들은 광활한 사탕수수 농장에서 쿠바 민중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엄청난 부를 누렸다. 사탕수수는 쿠바가 지닌 신의 축복이자 식민지에 대한 경제적인 착취의 중심이었다.
반면, 아바나클럽이 탄생한 배경에는 쿠바혁명이 있다. 세계적인 럼주로 유명한 바카르디 Bacardi의 본사는 원래 아바나에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바카르디 가족은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럼주 사업을 시작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1930년에 완공된 12층짜리 바카르디 빌딩은 완공 당시 아바나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으며, 독일, 이탈리아 등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1959년 혁명 이후 모든 기업이 국영화되면서 바카르디는 쿠바를 떠났고 빌딩은 현재 비즈니스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쿠바 정부가 바카르디를 대신할 수 있는 럼 브랜드로 육성한 것이 바로 아바나클럽 Havana Club 이다. 쿠바에 가면 평소에 술을 잘 안 마시던 사람도 쿠바 칵테일의 매력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비타민 R’ 이라는 쿠바인의 재치 있는 농담처럼 아바나 클럽은 쿠바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활력소이다.
카리브해의 햇빛은 강렬하다. 모자와 썬그라스, 양산까지 챙겨 나와도 한 낮의 태양은 여행자를 쉽게 지치게 한다. 그럴 때는 더위를 피해 바에 들어가 시원한 칵테일을 마시며 라이브 밴드의 음악을 듣곤 했다. 낮은 여행자의 특권을 누리기 좋은 때라면, 밤은 쿠바인과 어울리기 좋은 때이다. 해가 지고 더위가 사그러들면 쿠바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 앞에는 흔들의자와 함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노인들이 있고, 젊은이들은 음악과 춤을 찾아 광장으로 모여든다.
트리니다드는 쿠바 섬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1514년에 건설된 유서 깊은 도시로 스페인에서 건너온 쿠바 초대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케야르에 의해 세워졌다. 사탕수수 농업이 가장 호황을 누렸던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로 된 골목길을 따라 알록달록 예쁜 집들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낮 시간에 즐길 일이라면, 밤이 되면 라이브밴드의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매일 밤 축제가 열리는 마요로 광장으로 올라가야 한다. 낮에는 그저 평범한 계단과 오래된 건물이지만 밤이 되면 특별한 곳으로 변신한다.
야외무대 위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 사이로 달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음악과 춤이 시작된다. 카사 데 라 무시카 Casa de la Musica, 카사 데 라트로바 Casa de la Trova 에서 춤과 음악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밤이 지나간다. 단연코 트리니다드는 살사를 즐기는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쿠바에서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다. 강렬하게 파란 하늘과 바다 빛깔 덕분인지 쿠바에서 찍은 사진은 여행만큼 특별했다. 더할 나위 없이 낡은 건물들과 자동차들은 남다른 쿠바인의 색감이 더해져 잡지 사진의 한 컷이 된다.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여행자들에게 관대했고, 가끔은 셀카 사진의 한 구석에 익살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쿠바에서 인생 샷 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거리와 카페, 바에서 수시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라이브밴드의 음악은 사진뿐만 아니라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쿠바에서 돌아오고나면 그 목소리와 장면, 하늘빛을 온전히 담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탓하고 싶어질 것이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쿠바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와 동행했던 젊은 여성 가이드는 미국 브랜드 신발과 스마트폰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가끔 엄마와 세대차이 때문에 말다툼을 한다는 청년세대였다. 이탈리아 이주민 3세대인 카사 주인은 영어에 능통하고 당직 직원을 두고 카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오래된 세대들은 그동안 쿠바를 지탱해주던 근원이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공감받지 못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쿠바 역시 지금까지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다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쿠바로 여행을 떠나 이유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혁명처럼 낯설지만 아직은 충분히 낭만적인 쿠바여행, 더 늦기 전에 떠나보는 건 어떨까
* 월간 비건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