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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on Jan 05. 2018

여자들, 히말라야를 꿈꾸다

여자들의 네팔랑탕 트래킹

누구나 한 번쯤은 히말라야를 꿈꾼다.

트래킹 코스가 다양하고 설산이 아름다운 네팔은 많은 산악동호회와 트래킹 전문여행사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이다.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을 즐겨 걷는 여성이라면 히말라야 트래킹은 꼭 가봐야 할 여행으로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등반의 고수라는 남성들이 중심이 되는 여행에서 여성은 행여나 뒤쳐질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더구나 매끼 한식을 조리하기 위해 엄청난 식재료와 식기를 짊어지고 올라가는 네팔 포터들의 헐벗은 발을 보면서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혼자 떠나기에는 낯설고 두렵기 때문에 히말라야 트래킹의 꿈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그렇다면 여자들끼리 떠나면 어떨까? 서로를 지지하고 배려해주는 여성들과 함께 천천히 히말라야를 오른다면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과 네팔인의 삶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여자들끼리 떠나는 네팔 트래킹, 그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소개한다.






Q. 네팔에 다녀온 이후로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구요.

 

‘마야’라는 네팔어 이름이에요. ‘사랑’이라는뜻이래요. 랑탕 트래킹을 함께 한 포터들이 여정 마지막에 우리 일행들에게 떠오르는 네팔 이름을 만들어줬는데 저는 마야였어요.

 

Q. 평소 여행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에 비해 만족감이 큰 편은 아니었어요. 또래 여성들이 겪는 비슷한 상황일 듯 한데, 결혼과 출산으로 아이가 있는 경우 양육으로 인해 자신만의 시간을 낼 수 없구요. 미혼은 함께 여행을 떠날 마음에 맞는 동반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결국 모두 휴양지 중심의 여행을 택하는경향이 높거든요.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사회적입지는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은 두려운 게 현실이에요. 저도 지난 2000년에 떠난 배낭 여행이 혼자 한 마지막 여행이네요. 그때는 가능했는데 이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새삼 서글프네요.

 

Q. 랑탕트래킹은 비교적 생소한 히말라야 트레일이에요. 여행에 동참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히말라야 등반은 숙원이었어요. 관련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오랜기간 등반기회를 엿봤는데 일면식 없는 이들과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오르는 상상은 그 자체로 겁이 나더라구요. 여행여락은 여성들만의 여행이라는 점에서 안심이 됐어요. 코스 난도가 높지 않았고, 일정도 무리하지 않는 선이어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또 랑탕트래킹은 목적이 산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2년 전 발생한 지진 피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취지를 갖고 있어 의미가 깊었구요.


Q. 체르코리 정상을 찍은, 히말라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산소통 투혼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체르코리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 각지 못했는데 길을 가다보니 멈추지 못한 거에요. 그 날 열 시간 정도 산을 걷고 내려와 강진곰파 롯지의 난로 앞에 앉았는데 계속 멍했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무념무상의 유체이탈 경험을 했다고 할까요. 몸과 마음이 화학적으로 재구성된 느낌이었어요. 내가 해 냈다는 성취보다 소중한 건 포기하지 않은 내 스스로를 기특한 제자 보듯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기정체성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경험이에요. 이후 여행에 대한 접근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관광이나 휴양 위주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며 몸을 소진하는 쾌감을 알게 됐거든요

 

Q. 우리 사회의 여행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긍정적이에요, 길 위의 학교라고 표현할 정도 잖아요. 여행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익숙한 환경에서 틀에 박힌 행동을 하게 되는게 일상이라면 여행은 여기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저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중요하지는 않아요.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경험’이 소중하죠. 낯선 삶에서 나를 보는 경험을 주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여행의 의미에요. 다시 말해서 맥락을 바꿔보는 것이죠. 변화된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최근 갖게 됐어요.

 

Q.여성이기에 마주하는 억압과 한계를 극복하는데 여행이 주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보기에 여성그룹은 주변으로 인해 자신이 규정되고 이 때문에 위축되는 경향이 높아요. 여성스러우면 그 이유로, 또 외향적이면 또 다른 이유로 평가하는 잣대가 되죠. 때문에 다른 이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긍정적 느낌이 필요하다고 봐요. 여성들만의 여행이 갖는 힘이 여기 있어요. 서로 ‘중화’ 될 수있거든요. 여행을 통해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다른 여성들을통해 영향을 받고 중화되면서 중립성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Q.  스스로도 여자들의 여행을 통해 크게 변화된 자신을 느끼나요?

 

일상에서 자기의 짐을 남에게 지우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들을 넘치게 봤어요. 환멸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여행을 하는 여성들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다 눈에 보였어요. 그 모습이 위로가 되더라구요. 또한 네팔 트래킹 과정에서 나이는 어리지만 ‘모성의 느낌’을 전달해 준 여성 포터들과의 교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전에는 강하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고,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힘든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만들려고 애쓰게 됐어요. 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에요. 낯선 이들을 만나 다른 맥락에서 바라보게 되는 나의 모습이 어느새 편안한 것이죠, 이런 긍정적 기운을 다른 분들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이 : 박미정 (여행여락회원)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백운희 (여행여락 회원)


네팔 여성포터 '샤티'와 함께 걷는 랑탕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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