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리더를 하면 안된다?

난 저런 리더가 되지 않을거야.

"여자가 팀장이면 골치아파"

10년 전 꼬꼬마 신입 시절, 회사에서 듣고 속으로 기함을 금치 못한 말이었다.

21세기 직장인 중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에서 부딪혀야할 현실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2번 째 부서 이동에서 처음 여자팀장을 경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 절로 한 마디가 나왔다.

'내가 여자 팀장 다시 만나나 봐라....'



팀 이동 6개월 만에 칼을 갈고 이직을 하게 만든

그녀의 행동은 40대가 해야할 행동이라기에 참 유치했다.


매니저가 쓴 보고서 본인이 쓴 것처럼 사업부장에게 혼자 들고가서 보고하기,

자기가 맘에 안드는 매니저가 보고하러 오면 1시간 넘게 옆에 세워두고 보고 미루기,

옆 팀 다 들리도록 2년차 매니저 혼내기.....


내 일이 아닌데도 옆에서 이걸 보자마자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팀에 오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군기 잡아야겠다 생각했는지 그 타겟이 곧 나로 바뀌었다.


그 당시, 입사 3개월 된 내 부사수가 실수를 하나 했는데, 팀장이 그걸 지적했다.

(입사 3개월이면 회사 화장실 위치도 겨우 파악했을 때 아닌가..)

그 때 그친구를 감싸주려고

'아.. 제가 중간에서 체크를 꼼꼼히 못한거 같다.

지금 바로 다시 보고 수정해서 드리겠다.'

그 말을 한 다음날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1. 내 보고서를 팀장이 혼자 상위권자한테 보고하고 피드백 안주기.

2. 일은 진행을 시켜야하니 지시사항 여쭤보면, 그것도 모르냐고 갈구기.

3. 자료 만들어갔더니 전 팀원들 앞에서 PT와 강의의 차이도 모르나며 면박주기

(그 자료는 PT와 강의의 차이를 알아야할 필요도 없는 자료였다...그냥 면박주기성 갈구기)

4. 팀원들과 야근하다 저녁먹고 왔는데 저녁 먹고 왔다고 갈구기 (심지어 내 사비로 밥먹음)

5. 아침에 출근 인사했는데 인사를 왜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하냐고 갈구기

(내가 너무 각잡고 인사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잡는줄 안다나....)

6. 그 담날 가볍게 목례햇더니 얼굴도 안보고 인사하냐고 갈구기

(정확히 이 갈굼을 당한 날, 퇴사를 결심하고 바로 링크드인과 리멤버를 업데이트했다)

....................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든,

적지 못할 사건들이 수도 없지 많지만,

떠올리기도 싫어서 애교수준의 이야기만 골라서 가볍게 이 정도만 적으려고 한다.


근데 그 때는 '회사생활에 힘든 때도 있지뭐~' 라면서

점심에 동기들과 밥먹고 양재천 산책하는 재미로 버텼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또 들어와서 일을 하면 할 만했다.

원래도 스트레스 내성이 높은편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팀장은 그것도 맘에 안들었었던 것 같다.

본인이 밟으면 밟혀야 되는데, 무쇠마냥 꿈쩍을 안하니 말이다.


하지만 무쇠도 사람이다.

아침 인사 한마디에 30분을 털린 날,

나는 바로 링크드인과 리멤버를 켰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S그룹에서 오퍼 제안을 받았다.


여자 팀장은 이직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악이었다.

그래도 나는 꼴에 상사라고,

8년 가까이를 함께 한 회사라고 나름 좋은 상태에서 이직을 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이직을 말하기 전까지 조용히, 묵묵히, 심지어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팀장은 나를 부르더니

자기 맘대로 나를 다른 부서로 전출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 당시 그 여자 팀장은 나의 이직을 모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친했던 인력운영 담당자를 찾아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자 팀장은 내가 타 부서로 가고싶어 한다고 했다면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인사팀에 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팀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팀장인 척을 했던 것이다.


너무 화가 났다.

이제 나도 팀장으로서 존중해야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도 팀장을 바이패스하고 인사담당자에게 바로 이직을 통보했다.

처음에 인사담당자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화가나니 그냥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줄 알았던 듯 싶다.


나도 참고 있던 자초지종을 말했고,

그동안 당했던 일이 녹음된 파일도 원하면 제공하겠다고 했다.

인력 운영 담당자의 얼굴에서 '아차, 일났다' 싶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잘 생각해본 것 맞냐며 말리는 인사 담당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자리를 나와서 연봉 협상중이던 S사 담당자에게 연락해 이직을 수락했다.


그 여자팀장은 본인이 나를 엿먹인 줄 알았는데

본인이 뒤통수를 세게 맞으니 꽤나 당황해 했다.

내가 갈 곳이 없는데 이직한다고 하는거 아니냐며

우리 팀 책임에게 깎아내리는 말을 했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팀장을 끝까지 바이패스하고 팀 단톡방에 퇴사 통보를 날려버렸고

떠나기 직전 진행중이던 팀장 리더십 진단을 시원하게 그어버리고 나왔다.

그리고, 하루도 쉬지 못한 덕분에 쌓여있던 21개의 휴가를 쓰고 스코틀랜드로 힐링을 떠났다.



이직 후에도 나는 여자 팀장을 겪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사뭇 달랐다. 꽤나 잘 적응했고 잘 지냈다.

여자 팀장이라면 치를 떨게 된 내가 이직을 하고 그나마 좀 치유를 받은 셈이다.

(그리고 막판에 화나서 팀장을 바이패스하고 퇴사통보를 한 건,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좀 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나도 나이를 먹었나....)


그 시절이 다 지나고 나서 보니,

여자 팀장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문제였다고 객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그 사람은 왜 문제였을까?하는 생각도 이어서 하게 되었고,

작게 나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나의 단상은 다음편에서 다루겠다.)


결론은 나도 여성으로서 언젠가 리더가 될테지만

"저런 리더는 되지 말아야겠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