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여성과 지도력' vol.28.에 실린 글입니다.
감리교여성능력개발원에서 발행하는 '교회 여성과 지도력' vol.28에 실린 글을 옮겨 적습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주최한 ‘여성주의 묵상모임’에 참여하게 된 일의 시작은 사실상 ‘믿는페미’의 ‘짓는예배’였다. 조금 더 생각하자면 믿는페미의 sns를 기웃거리던 일의 시작은 2017년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보았던 ‘교회언니들’이란 단편영화일 수 있다. 혹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오랫동안 혼자 내 안에서 차오르고 있던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답답함일 수도 있다. 고연령층 중심의 보수적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모태신앙인 내가 나의 어설픈 페미니즘적 고민을 교회 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답답함, 혹은 그게 답답한 일인줄도 모르고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서 서로 등 돌리고 모른척하며 살아오던 페미니스트와 기독교인 정체성이 조금씩 서로를 들여다보며 생기던 무의식적인 균열일 수도 있다. ⛪️
모태신앙으로 지금껏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사는 지역에 기반해 여러 교회에 출석해왔지만, 그 어느 교회에서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교회 내에는 페미니즘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찮게 29살에 만나게 된 페미니즘에서는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외국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고 살다가 또 답답증이 차오르던 어느 날, 목회자인 지인에게 물었더니 무언가 많은 자료들의 목록을 보내주면서 기독교 내에도 페미니즘과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일단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기독교 안에서 여성의 자리매김에 대해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또 그런 분야를 혼자서 ‘공부’하자니 그런 분야는 신학생들의 영역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마음 속에 접어두었다. ‘그렇구나 기독교 안에도 뭔가가 있나보다, 하지만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아니구나, 아이들 둘 키우며 살기도 바쁜데 일단 그냥 다니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온라인이어서 용기냈던 믿는페미의 짓는예배에서 처음으로 나와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기독교인들과 만남으로써 내 안에서 불화하던 페미니즘과 기독교 신앙도 조금씩 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열몇명 되는 사람들과의 온라인 예배였는데, 그렇게 많은 페미니스트 기독교인들과 모여본 적이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래서 짓는예배 톡방에 이 ‘여성주의 묵상모임’ 홍보물이 올라왔을 때에도 용기내어 신청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믿는페미 짓는예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묵상모임에서 접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그저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집으로 배송되어 온 ‘언니들의 뜰밖기도’ 책에는 스무명 남짓한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세상에 기독교인 여성들에 대한 책이라니! 거기에는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와 레이첼 카슨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무언가 기대를 안고 접속한 첫 모임에서는 여성 목사님, 신학생, 혹은 관계자분들이 넘쳐났다. 지금껏 살면서 교회 내에서 여성 목사님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열몇명 남짓한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나만 일반인이라 위축될 정도로 페미니스트 목회자들로 가득했다. 혹시 여기는 목회자만 오는 모임인가 싶어 잠시 고민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어설프게 ‘관상’이란 것을 시도해보다가 생각나서 찾아 들었던 ‘나의 안에 거하라’라는 찬양을 통해 내 삶을 관통하는 은혜를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마지막 모임까지 참석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러면서 매번 모임마다 받은 은혜를 기록해두고 싶어서, 20대 때 이후로 쓰지 않았던 묵상과 기도 노트를 쓰게 되었던 것 역시 전적으로 이 묵상모임에서 받은 은혜 덕분이었다. 사실 4번의 온라인 모임 동안 침묵 가운데 오래도록 묵상한다는 ‘관상’을 내가 잘 한 것 같지는 않다. 처음 들어보는 ‘렉쇼 디비나’와 ‘관상’은 왠지 멋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내가 잘 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묵상시간에 대체로 컴퓨터 앞에서 혼자 눈을 감고 앉아있다가 그대로 졸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의 꼬리를 붙들며 성경도 찾아보고 찬양도 찾아보는 다소 산만한 일들을 했다. 방문 밖 거실에서 배구경기를 보며 신나게 떠들던 가족들의 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일부러 찬양을 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조차 하나님께서는 늘 이 묵상모임에서 나에게 새로운 기도제목을 주셨다. 아시시의 성 클라라에 관해 배우고 함께 묵상하면서는 나도 성 클라라가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의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게 뭔지 알게 해달라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안에 내 영혼이 잠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셨다. 매주 묵상하는 여성들에 대해 따로 찾아보면서 그 여성들이 살았던 삶을 알게 되자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그 여성들과 지금 연결되는 느낌, 혹은 그 여성들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기도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기도할) 용기가 났다”(언니들의 뜰밖기도, p.44)는 도로시 데이에 관해 묵상한 마지막 모임에서는 나 역시 감사의 제목들을 드리게 되었다. 그렇게 8월 초에 끝난 묵상모임을 지금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 역시 ‘감사’다. 그 동안 나의 교회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페미니스트 기독교인들, 더 나아가 페미니스트 목회자들과 연결될 수 있었음에 대한 감사, 모태신앙이라 신앙생활이 지루해질까봐 ‘렉쇼 디비나’와 ‘관상’이라는 새로운 묵상의 개념을 배우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그간 기독교 역사 안에서 고군분투 해왔던 수많은 ‘언니들’과 연결될 수 있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과 페미니즘이 만나는 자리에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나의 신앙과 페미니즘도 내 안에서 조금은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 게다가 코로나상황이라 온라인으로 했던 모임이지만 대면과 다를바 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 그래서 이 후기는 그저 감사하다는 기록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교회 안팎에서 혹은 교회 안과 밖의 경계선에서 머뭇거리고 있거나 나처럼 답답해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다가갈 수 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자신과 또 서로와 마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선은 그런 기회들에 나 또한 기꺼이 참여하는 일이 곧 나의 두 딸들이 살아가는 날들을 나와는 다르게 만드는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